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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6.25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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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6.25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 이 량 기자
  • 승인 2018.06.25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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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바로 6.25 전쟁이 일어난 날이다. 월력에 ‘6.25 전쟁일(戰爭日)’이라 적혀 있다. 1950년 6. 25일에 발발(勃發)하였다. 올해로 68주년을 맞은 것이다. 지난날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한 사회단체가 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6.25전쟁 및 남북통일에 관한 의식 조사를 실시해 발표한 바가 있는데 첫 번째 질문인 6.25전쟁을 일으킨 나라를 묻는 질문에선 86%의 학생들이 북한을 지목했으며, 소련9%, 한국3%, 미국과 중국이 각각 1%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당시 북한의 동맹국(同盟國)이고 직접 참여한 중국(中國)의 비율이 가장 낮게 나타난 것과 한국(韓國)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답변도 포함돼있어 안보교육(安保敎育)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6.25전쟁이 일어난 해를 묻는 질문에는 1950년이라고 정확히 알고 있는 학생이 58%로 나타났지만 절반에 가까운 42%의 학생들은 전쟁이 일어난 해를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6.25도 많이 아는 것 같으면서 모르는 게 많다.
 
6.25전쟁이 일어난 해를 모르고 있는 학생 중 20%가 넘는 학생들이 1945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답했으며, 이어 1955년(6%), 1960년(14%), 답하지 않은 학생도 2%로 나타났다. 성인들에게 물어도 정확히 바로 알고 있는 수는 많지 않다. 이와 관련 6.25전쟁 당시 학도병(學徒兵)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참전하겠다(32%), 참전하지 않겠다(23%), 외국으로 떠난다(22%), 모르겠다(21%)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6.25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어느 분야에 가장 중점을 두어야 되겠느냐는 질문에는 국제관계 개선(改善)을 해야 된다는 응답이 54%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그 다음으로 군사력을 강화해야 된다가 28%를 차지했다. 이에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22%의 학생들이 아예 외국(外國)으로 떠나겠다는 응답은 청소년들의 국가관(國家觀) 확립에 큰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른들도 많은 세월이 흐른 상황이어서 얼마나 바람직한 답변이 나올지 모를 변수(變數)도 없지 않으리라 말했다.
6,25 연구로 1200페이지가 넘는 사진집을 펴낸 안재철씨는 “사람들이 한국(韓國)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젊은이들이 6.25에 대한 바른 인식(認識)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이 사진집을 3권짜리 한 세트(각 400여 페이지씩 총 1240페이지, 판매가 48만원)로 만들어 우선 500부를 인쇄했다. ‘6.25전쟁과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꿈’ 이라는 제목(題目)의 이 책은  전투마다 지도(地圖)를 넣고 사진에는 일일이 영어 주석(註釋)을 달아 외국인도 읽을 수 있게끔 했다. 지난날 핵안보(核安保) 정상회담 때 오바마 대통령에게 기념증정(記念贈呈)을 하기도 했다 한다.
영국(英國)은 6.25당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兵力, 6만 3000명)을 지원했다. 글로스터연대는 전쟁 중이던 어느 날 밤 중공군 187사단의 공격을 받았다. 이들의 위치는 중공군이 서울을 재점령하는 공격노상(攻擊路上)이었다. 중공군의 공격으로 A중대가 결국에 휩쓸려 버리고 무전병은 대대장 칸 중령에게 "우리는 박살났다. 우린 그렇게 되버렸다 이상" 하며 마지막 무전(無電)을 보낸다.
                       
남북관계가 긍정적인 가운데 6.25를 맞는다.

이 영국군 대대의 북동(北東) 쪽 중공군 188사단은 미7연대 1대대를 추격하여 남쪽으로 이동, 노섬버랜드 퓨질리어와 왕실 얼스터 라이플 부대와 교전(交戰)을 하게 된다. 이들이 휴전 60주년을 맞은 2013년 영국에 6‘25 박물관(博物館)을 세우기로 한 기록을 최근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우리가 6.25에 관한 역사를 제대로 아는 활동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68주년이라는 기념일을 맞는 불만이라 해야 할지 정녕 큰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方案)을 연구해 보아야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많은 젊은 세대가 편향(偏向)된 역사의식(歷史意識)을 갖고 있는 것도 오늘 제가 이 같은 미완성(未完成)의 글을 컬럼으로 싣게 되는 까닭이라는 점을 전하며 6.25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히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는 결론으로 마감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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