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충성’

송대홍 기자l승인2018.01.23 14:46l수정2018.01.2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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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송대홍 태안주재 부국장.

무술년(戊戌年), 개의 해가 밝았다. 동양의 간지(干支)는 음력 문화의 산물이므로 엄밀히 말하면 아직은 닭의 해인 정유년(丁酉年)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간지는 시간을 헤아리는 단위로서의 기능을 거의 정지당한 지 오래므로 음력을 고집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올해의 띠 동물인 개는 야생을 떠나 가장 먼저 사람의 품을 파고든 동물이라는 점에서 친밀감이 단연 앞서고, 사람에 대한 충성심 또한 다른 가축을 압도한다. ‘충견(忠犬)’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자신의 특성을 나타내는 수식어로 ‘충성 충(忠)’ 자를 허락받은 거의 유일한 동물이 개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세상의 모든 충성이 이렇듯 자신이 얻게 되는 이익에 대해 주판을 튕긴 뒤에 발휘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떠한 계산도 없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충성도 있다. 그러나 모든 충성을 관통하는 공통점 또한 있다. 어떤 형태의 것이든 충성은 그 자체로 목적인 덕목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을 다하는 것이 충’[盡己之謂忠]이라 했고, 다산은 좀 더 부연하여 ‘속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충’[中心事人謂之忠]이라고 했다. 정리하자면 무슨 일을 할 때,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심으로 헌신하는 품성이 충인 것이다.
자신이 섬기는 대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헌신하는 눈먼 충성으로 변질된 소지를 안고 있다. 그리고 헌신을 받는 자 또한 그런 맹목성을 ‘충’의 알파요 오메가로 인식할 때 그 충성은 길을 잃고 ‘위험한 충성’으로 전락한다. 한때 회자되었던 ‘배신의 정치’라는 말이 가능할 수 있었던 문맥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는 말도 그 어간에 이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나온 발언으로 기억한다.
이른바 ‘국정농단’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악’을 의식하면서 그런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할 때 그들은 오히려 확신범에 가깝다. 국가 정보기관이 불법적인 행위들이 들춰지는 상황에 대해 해당 기관의 직원들은 이 나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마지막 보루이자 최고의 전사들이라고 추켜세우면서 그들이 조사받는 참담한 현실에 가슴이 찢어진다며, 본말이 전도된 소회를 밝히던 전직 기관장의 의연하기까지 한 모습에서 그것을 느낀다. 짐짓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며 독배라도 내리면 마시고 싶은 심정이라면서도 한편으로 법정에서 다른 말을 하는 옛 부하들에 대해서 한마음 한뜻으로 국가에 열심히 충성한다는 일념으로 함께 일해 놓고 지금 와서 상사의 강제적인 지시였다고 하니 안타깝다고 한, 자칭 ‘망한 정권의 도승지’의 의식구조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던, 그야말로 개가 들어도 웃을 말로 자신들 행위의 무오류를 강변하던 30년 전 경찰 고위간부의 당당함(영화 〈1987〉)과 그대로 오버랩되는 위험한 충성의 장면들이다.
자신에 충성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앞서 인용한 선인들의 말 속에 있는 듯하다. ‘자기를 다한다’는 것은 곧 ‘마음을 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애오라지 감정에 충실한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마음에 선천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보편적인 도덕관념(moral sense), 동양식으로 말하면 양지(良知)와 양능(良能),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仁)이나 사단(四端)의 빛을 길잡이로 삼아 헌신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충성이 눈이 멀게 될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모두가  안타까운 현실이 아닌가 싶다.


송대홍 기자  thdeogh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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