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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참으로 아름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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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참으로 아름다운 이유
  • 이 량 기자
  • 승인 2018.01.23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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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서병규 본사주필.

황혼기에 접어든 필자가 요즈음 대학 강단에서 간혹 젊은이들의 모습이 웬일인지 그늘지고 비틀어진 모습을 볼 수 있어 안타까운 생각을 갖게 된다. 무엇을 이루려고 참을성을 앞세워 끈질기게 노력하는 성실한 의욕이 부족해 보이고 어떤 상황에서나 쉽게 자기 존재를 평가절하 해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울 때도 간혹 있다.
아마도 취업마저 여의치 않은 현실이 주는 불만, 불안감이 뒤섞여 일그러진 표정들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영롱해야 할 눈망울이 슬픈 것처럼 흐려 있고 씩씩해야 할 기상(氣相)이 풀죽은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젊음이 아름답게 보이지를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젊음이 꽃도 피기 전에 시드는 것인지, 아니면 젊음의 의미가 다라진 것인지? 하는 의문도 갖게 된다.   

젊음이 제대로 꽃피어야 나라도 흥하기 마련이다.         

진정 젊음이란 싱싱하고 새롭고 힘차며 꿈과 의욕과 창조를 위한 몸부림이 철철 넘쳐야 할 텐데 이기적이고 타산적이며 순간적 쾌락을 탐닉(耽溺)하는 굴절된 모습으로 변질된 게 아닌가 싶은 안타까움을 느낄 경우도 간혹은 있다. 진정한 젊음은 미래지향적 사고가 바탕을 이루고 성취의 가능성이 무한다다는데 있을 텐데 간혹은 희망을 지닌 젊은이들로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어 문제가 있다는 느낌도 든다.
흔히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아니라 ‘무엇인가로 되어가는 과정(過程)’이라고 말한다. 젊음이 좋다는 것은 되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삶속에서 다양한 가능성들이 가장 많이 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에게서도 굉장한 가능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는 사실이 의식의 표면에 부각되지 않아 그 가능성의 의미가 채 여물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흔히들 인식한다.
그리고 노년의 허전함은 이제 더 이상 어떤 성취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데서 오는 심리적 반응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과거의 추억 속에서 살고, 중년은 현실에 집착하여 사는가 하면, 청년 즉 젊은이는 미래지향적 사고(思考)가 지배하는 무한한 가능성에 의지해 산다.’고 하였다. 이 세상에 귀(貴)한 것은 많다하겠지만 젊음보다 귀한 것이 있겠는가? 절음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전개되는 생명의 약동을 더 값지고 알차게 하는 지식과 슬기를 갈고 닦는 것이기 때문에 한없이 귀한 것이다.
건전한 지식을 터득하고 영롱한 슬기를 더해 가는 착실한 성장의 모습이야 말로 젊음이 존귀하다는 증표(證票)가 될 것이다. 젊음의 진정한 의미는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숭고한 꿈을 키우고 함께 삶을 엮어나갈 인생의 동반자들과 사귐을 깊고도 넓게 이루며 가장 값진 삶의 목적을 성취해 가는데 있다 할 것이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어둡고 답답하다 하더라도 아름다운 미래의 꿈이 있기에 젊음은 언제나 환한 맑고 밝은 웃음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거기서 느끼는 인간의 고독이 뼈에 사무친다 하더라도 웃으며 극복(克服)해 나갈 여유를 자져야 한다. 또한 인생의 허무감(虛無感)이 무섭게 마음을 짓누른다 해도 무의미의 노예가 되거나 허무주의(虛無主義者)와 쉽게 타협을 해버리지 않고 삶의 진실한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끈질긴 의욕을 견지할 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가 인생여정의 산 교훈이다

 인내심이야 말로 미래를 기약하는 약속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이해된다. 이제 젊음을  젊음답게 하려면 현실을 바로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닥친 시련은 그 자체가 절망일 수는 없다. 흔히 ‘위기가 기회’라 말하듯 우리에게 부과된 난관은 미래를 꽃피울 능력과 기능을 배양할 훈련인 것이다. 예방주사를 맞아야 신체 면역이 생겨 질병을 예방할 수 있듯이 고난, 난관을 겪고 넘어서야 비로소 행복의 피안(彼岸)에 이를 수 있다는 진리를 바로 깨우쳐 알아야 할 시점으로 이해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선현들도 ‘고진감래’ 라는 말을 즐겨 쓰며 교훈으로 남겨온 게 아니겠는가? 고난과 고통의 늪을 지나야 탄탄대로 위에 젊은이나 노인 모두의 행복과 만족의 탑을 세울 수가 있음을 바로 알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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