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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람이요 살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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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람이요 살림이다
  • 송대홍 기자
  • 승인 2017.11.15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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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송대홍 부국장.

왕을 쫓아낼 수 있는가? 일찍이 다산 정약용은 주장했다. 왕의 권력은 민(民)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왕의 선출은 추대에 의한 것이기에 잘못된 왕은 추대를 철회함으로써 바꿀 수 있다고 말이다(‘원목’, ‘탕론’ 등). 그 누구도 바꿀 수 없고 사상사에 길이 빛날 ‘주권재민’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다산은 정치를 말하길 왕에게 말했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왕조사회였기 때문이리라. 나아가 그는 모든 권력을 총람하는 막강한 왕을 지향했다. 그가 왕권강화를 주장한 것이 어디 왕 개인과 측근의 부귀영화를 위해서였겠는가. 그것은 탐관오리의 중간착취와 거대상인의 독점으로부터 민을 보호하여, 민이 고르게 잘사는 정치가 베풀어지기를 기대해서였다. 부정하게 사익을 취하는 세력을 제압하고 왕이 공명정대한 존재로서 정치의 과제를 수행할 것을 기대해서였다.
왕이 수행할 정치의 과제가 무엇인가? 다산은 고전의 ‘지인(知人)’과 ‘안민(安民)’에 주목했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명철함이니 인재에게 관직을 줄 수 있고, 민을 편안케 하는 것은 은혜로움이니 민이 이를 마음에 품는다. 명철하고 은혜로우면 나랏일이 무슨 걱정이겠는가.”(〈상서고훈〉) ‘지인’의 핵심은 관직 주는 것을 공정하게 하는 것이요, ‘안민’의 핵심은 공적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다산은 말했다. “나라를 다스리는 큰 정사(政事)가 둘 있는데, ‘용인(用人, 사람 쓰는 것)’과 ‘이재(理財, 살림살이)’다.”(〈대학공의〉) 〈경세유표〉의 내용도 그것이다.
다산이 왕을 높인 것은 왕정(王政)이 행해지길 기대해서였다. 그는 왕이 부지런하고 치밀하게 일하여, 통치 시스템이 잘 작동하게 하고 민의 살림을 넉넉하게 하기를 기대했다. “왕정이 없어지면 민이 곤궁해지고, 민이 곤궁해지면 나라가 가난해지고, 나라가 가난해지면 거둬들이는 것이 괴로워지고, 거둬들이는 것이 괴로워지면 인심이 이반하고, 인심이 이반하면 천명이 떠난다고했다.”
다산에게 정치란 모든 사람들이 효도와 공경과 자애[孝·弟·慈]를 실천할 수 있도록, 그 전제가 확보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정치를 행할 때다. 왕조사회 아닌 민주사회라고 다를까. 일의 관건은 사람[人]에 있고, 살림[財]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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