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6 10:21 (금)
불신풍조(不信風潮), 만병의 근원이다
상태바
불신풍조(不信風潮), 만병의 근원이다
  • 중앙매일
  • 승인 2017.03.20 1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사진은 서병규 본사주필.

우리사회에는 유감스럽게도 불신풍조가 각 부문에 넘쳐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사회기반의 뿌리부터가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사태의 원인을 규명하자면, 다양한 이유가 거론된 것이지만 어떤 목적이나 목표달성에 몰두, 집착한 나머지 절차나 과정, 수순(手順)을 접어두고 승패의 논리가 옳고 그름인 정사(正邪)의 윤리를 압도하여 자기중심의 극단적인 행동양식으로 기울게 돼 서로 믿고 의지하는 신뢰관계가 깨져 불신이 넘쳐나게 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찌든 가난을 벗어나 잘살고 싶은 게 한결같은 염원(念願)이 있어온 게 사실이다. 그러니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떤 일, 무슨 짓이라도 해야만 했고, 그 이면에 깔린 깊은 뜻쯤은 살펴볼 여유마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시점에 의식의 개혁은 필연(必然)이다

우선 살고 나서야, 생존하고 봐야 남은 문제를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긴박, 절실한 생존의 논리가 삶을 이끌어가는 주춧돌(支柱)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같은 논리, 상황을 벗어나 살 되 올바르게 살아야 하고, 나의 생존만이 아니라 모두의 삶이 따뜻하고 아름답게 엮어져야 한다는 방향으로 진전되어야 하겠다.
그렇다면 믿음직한 신뢰사회는 어떻게 이룩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이루되 모두가 힘 합쳐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나 어느 정당의 결의에 의해서 이루어질 일이 아니다.
신뢰사회를 이루는 일은 개인의 의식이 크게 바뀌어야 하고 조직의 논리, 단체의 생리, 집단의 역량(力量)이 점진적으로 바뀌어야하기 때문에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다. 개인이나 집단, 조직이나 단체 기관이 그 말이 속뜻과 겉뜻이 같게 표현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손해 없이 이익이 된다는 경험이 쌓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뢰기 정책되어야 한다. 그리고 결과가 아무리 훌륭하고 멋져도 그것을 이룬 과정과 절차가 올바르지 못하면 결코 인정받을 수 없는 분위기가 보편적으로 정립되어야 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상식이 깨지지 않는다는 데 대한 확신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 서로 상식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함의(含意)의 근거위에 성립이 되는 것이다. 상식이 번번이 깨지고 깨진 상식이 오히려 영광과 혜택의 지름길이 되는 사례가 없어야 한다.
가르친 대로 살고, 배운 대로 행동하여도 손해를 보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선생님,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믿음직스럽게 가르칠 수 있고, 그대로 행동을 하면 긍정적 보상이 따른다는 경험이 축적(蓄積)되어야 한다. 믿음직한 사회의 건설은 우리 세대의 지상과제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의 다음 세대에 아주 바람직하지 못한 유산을 물려주게 될 것이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뭉쳐야 할 때다                   

신뢰사회를 건설하는 일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쉬운 일로 여겨지지만 너무 자주, 너무 어이없게 상식이 깨지는 일들이 생겨 이제는 어떻게 하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는 바로잡아 나가야 할 것이다.
프랑스의 철인 ‘라 로스흐크’는 “사람이 상대를 믿지 않으면 상대에게 속아도 속은 것이 정당하게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서로 믿음으로써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 정당하게 되지 않는 사회를 건설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믿음이 폐기되면 인간사회는 마침내 와해되고 만다는 교훈을 통해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뢰사회 구축을 위해서는 사회지도층이 먼저 상식이 통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사회에 큰 영향을 주는 다방면의 변화와 혁신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