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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춘당 종택’·‘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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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춘당 종택’·‘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지정
  • 김동완 기자
  • 승인 2016.08.28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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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동춘당 종택 주변 전경.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대전 동춘당 종택’과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89호로 지정된 ‘대전 동춘당 종택’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5대조 송요년(1429~1499)이 15세기 후반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몇 차례 옮겨 지었으며, 현재는 1835년 원래 위치(대덕구 동춘당로)에 중건할 때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임진왜란 이전 충청지역 살림집의 흔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희소성이 있고, 상량문(上樑文) 기록 등을 통해 그 변천 과정을 명확히 알 수 있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

안채는 충청지역에서는 드문 ‘ㄷ’자형 평면을 이루며, 중앙에 놓인 6칸 규모의 대청과 양통집 구조인 서쪽의 날개채, 세로로 긴 안마당 구성은 이 지역 상류 주택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규모가 큰 일자형의 사랑채는 큰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이 별도의 마루방을 갖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내?외담이 설치되어 있다. 담은 그리 높지 않지만, 안채와 사랑채의 높이를 고려하여 시선을 차단할 정도의 가림벽 역할을 하고 있어 세심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동춘당 송준길의 종가로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아 4대가 지나도 신주를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불천위(不遷位) 제사와 기타 제례가 아직도 그대로 전승되고 있으며, 조선 중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집안의 생활사와 지역 향촌 사회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방대한 고문서 등이 소장되어 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90호로 지정된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은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1646~1697)가 1674년 종택에서 분가해 법천동(현재 대덕구 법동)에 건립한 고택으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1682~1764)가 1714년 현재의 위치(대덕구 동춘당로)로 옮겼다. 참고로, 송요화의 부인 호연재 김씨(1681~1722)는 17~18세기 여성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한시 134수를 남겼다.

이 고택은 조선 중기 대전지역의 살림집을 이해할 수 있는 건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동시에 갖추고 있으며, 큰사랑채는 양통집 구조이다. 대청을 한쪽에 두는 방식이나 안채의 마루방과 툇마루 등을 전면뿐만 아니라 사방에 다양한 크기로 배치하는 양식은 지역적 특색을 나타낸다.

큰집 격인 동춘당 종택과 같이 송준길 가문으로서, 호서지역 명문가 후손 집안으로의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조선 중기의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또한, 대전지역에서는 살림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적 특색을 알 수 있는 희소성도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대전 동춘당 종택’과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이 체계적으로 정비·보존되고,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다각도로 힘써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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