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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2등 ‘바보’ 한국영화 숨은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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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2등 ‘바보’ 한국영화 숨은진주
  • 인터넷뉴스팀
  • 승인 2008.03.1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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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다. 2등은 뜨겁다”라는 카피와 함께 열정적으로 일하는 직원들이 나오는 보험회사 광고가 있었다. 1위와의 격차가 클 때 2등을 굳히는 ‘2등 마케팅’전략이다. ‘국내 최고·세계 1위’라는 과장보다 설득력 있는 메시지다.

극장가에서도 이 같은 현상을 찾을 수 있다.

7~9일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추격자’(감독 나홍진)는 전국 관객 33만9895명(총 341만659명)으로 정상을 밟았다. ‘밴티지 포인트’는 15만1601명(68만7583명), ‘바보’는 14만8581명(65만5403명)을 모아 2,3위를 나눠 가졌다.

‘추격자’의 질주는 3주 연속 계속됐다. 2위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우위를 점했다. 할리우드 대작 영화들도 압도했다.

와중에 소리 없이 ‘추격자’를 추격하고 있는 두 영화가 있다. 국산영화 ‘바보’(감독 김정권)와 외화 ‘밴티지 포인트’(감독 피트 트레비스)의 2위 싸움이 치열하다. 2주 전에는 ‘바보’, 지난주에는 ‘밴티지 포인트’가 2위를 차지하며 엎치락뒤치락 각축하고 있다.

‘바보’와 ‘밴티지 포인트’는 태생부터 다르다. 한국과 미국 영화라는 것뿐 아니라 규모 차이도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바보’는 이야기, ‘밴티지 포인트’는 볼거리로 승부수를 띄웠다.

‘바보’는 강풀의 동명만화를 원작으로 한 순정 멜로드라마다. 어느 동네에나 살 법한 바보 ‘승룡’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씨가 훈훈한 감동을 전해준다. 첫 사랑 지호에게는 꿈, 동생 지인이에게는 엄마, 친구 상수에게는 생명을 선물한다. 베풀기만 해도 행복해 보이는 승룡의 모습이 가슴 찡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실제 만화를 그대로 옮긴 듯 동화 같은 풍경과 차태현의 눈물 나는 바보 연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1000만 네티즌을 눈물바다로 만든 원작의 파워가 스크린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감동과 웃음의 미학이 서로 숨바꼭질한다.

‘밴티지 포인트’는 영화 한 편이 예고편에 가깝다. 거대한 광장이 폭파되는 장면은 다시 봐도 압권이다. 미국 대통령의 암살을 둘러싼 음모와 배신, 납치와 총격전 등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다. 한 장면도 버릴 것 없는 영상으로 꾸려진 ‘팥고물 가득 찬 단팥빵’같다. 대신 그 빵은 맛이 별로다. 긴박함, 스릴로는 ‘추격자’를 따라가기 힘들다.

‘추격자’는 이미 3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할리우드에 리메이크 판권을 팔며 승승장구 중이다.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의 구세주라는 상찬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쇼트트랙에서 금메달을 따려면 상대 선수들을 견제할 수 있는 아군의 존재가 중요하다. ‘추격자’-‘밴티지 포인트’-‘바보’로 이어지는 흥행 순위 게임에서 연상되는 구도다. ‘샌드위치 전략’이 때로는 실력을 능가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바보’는 ‘추격자’의 빛에 가려진 한국영화의 숨은 보석이라 할 수 있다. ‘추격자’ 홀로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지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2년간 투자자를 찾지 못해 오랜 기다림을 겪은 ‘바보’의 흥행 선전은 여전히 ‘개봉 대기중’에 머무르고 있는 여타 영화들의 희망이기도 하다.

투자자의 안목과 관객의 호응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이것이 ‘바보’가 지닌 또 다른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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