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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무제의 연혁과 종류와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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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무제의 연혁과 종류와 특징
  • 중앙매일
  • 승인 2016.05.26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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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相龜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 해마다 단오절 전후에 계족산 상상봉에서 올리는 계족산 무제의 실제 모습

계족산 무제(巫祭)는 대전광역시 대덕구 장동의 계족산 상상봉에서 올리는 기우제이다.
  계족산(鷄足山)은 대전광역시의 대덕구와 동구에 걸쳐있는 해발 423m의 산으로 식장산, 보문산, 팔봉산 등과 함께 대전의 명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계족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형태가 닭의 발과 같이 등성이가 연이어져 있고 사이마다 골이 깊은 데에서 연유하였으며, ‘닭다리산’이라고도 일컫는다. 한편 가뭄이 심하게 들면 산이 울고, 산이 울면 비가 온다고 하여 계족산을 ‘비수리’라고도 한다. 계족산은 가파르게 우뚝 솟아오른 산봉우리가 고고하고, 산줄기에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가 되었던 고성(古城)인 길이 1천2백 미터, 높이 7미터 규모의 계족산성이 우뚝 솟아 있어 삼국시대의 요새였음을 잘 알 수가 있다. 계족산 서쪽은 대전 시가지가 펼쳐지고 동쪽은 대청호의 푸른 수면이 드넓은 등고선으로 드리워져 있다. 해마다 5월 중순에 5만여 명의 국내외의 관광객들이 참가한 가운데 세계 유일의 계족산 황톳길 맨발축제가 다양하게 개최되고 있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13km의 황톳길을 맨발로 걷거나 달리는 ‘에코힐링 마사이마라톤’은 계족산 맨발축제의 하이라이트로, 맥키스컴퍼니(회장 조웅래)가 지난 2006년부터 계족산에 황톳길을 만들고 매년 열어왔으며 2016년에 10회째를 맞이하여 이제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계족산은 조선시대 회덕현(懷德縣)의 진산(鎭山)이다. 계족산 무제는 아마도 아득한 옛날 이 산자락에 사람이 살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나 문헌에 나타난 것은『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가 처음이다. 충청도 회덕현 조에 '마을사람들이 이르기를 하늘이 가물 때, 이 산이 울면 반드시 비가 온다(鄕人云天旱此山鳴則必雨)'고 했다. 구술에 따르면 기우제를 지낸 곳은 계족산성(사적 제355호)이 위치한 인근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기우제단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계족산기우제단의 위치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백제산성인 계족산성을 통해 흔적을 유추할 수 있다. 계족산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계족산성성내에서는 백제시대는 물론 신라·고려·조선 시대의 토기와 자기 조각들이 출토되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산성으로 알려져 있는 이곳은 조선 말기에 동학농민군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산성의 특정 부분에 ‘우술성(雨述城)’이라 불리는 유적이 있어 기우제와의 연관성을 추정할 수 있다.
  장동의 진골과 새뜸, 읍내동의 뒷골 등 여러 자연마을에서는 산신제와 탑제가 현재까지 전승하고 있는데 비하여 계족산의 기우제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드물다. 계족산의 서남쪽에는 장동, 동남쪽에는 연축동, 동쪽에는 읍내동이 각각 펼쳐져 있다. 이 지역사람들은 ‘기우제’라는 용어보다 ‘우제(雨祭)’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 회덕현의 중심 마을인 현재의 장동에서는 ‘우제’라는 용어가 우세하다.

  계족산 무제는 다른 지방과는 다른 점이 있다. 물이 있는 갑천이나 평지를 놔두고 굳이 산 정상에서 지낸다. 산꼭대기에 장작과 생솔가지를 쌓아놓고 불을 지른다. 지금은 이런 의식을 번시(燔柴, 쑥을 태우는 것)로 대신한다. 산이 울어야 비가 오므로, 산신의 이마에 불을 지펴서 고통을 주는 것이다. 산을 강제로라도 울게 해서 비를 부르려는 주술이다.
                           

▲ 계족산 무제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면서 모방주술을 하는 모습

  계족산 무제는 위협주술과 함께 모방주술을 병행한다. 모방주술은 '닮은 것은 닮은 것을 낳는다(原因則生結果)'는 데서 출발하는데, 솥뚜껑 훔쳐내기 ? 샘굿 ? 암장 찾기 ? 비 부르기 등이 이에 속한다.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쓰는 것은 강우를 상징한다. 부녀자들이 솥뚜껑을 쓰고 두드리는 것은 잡귀를 쫓고 흥취를 돋우는 의미도 있다. 지금은 풍물이 이를 대신한다.
  위협주술은, 계족산 정수리(산신의 이마)에 장작과 생솔가지를 태운다. 불을 놓아 산신에게 고통을 가해서 산이 울도록 하는 것이다. 산이 울어야 비가 오기 때문이다. 장작이 타는 소리와 생솔가지 연기는 천둥번개와 구름을 상징한다. 천둥이 치고 구름이 일어야 비를 몰고 온다. 이것이 산꼭대기를 힘들여 오르는 이유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의식이 없다.  
  농경사회에서 비는 필수이므로 대전에서는 날이 가물면 신에게 호소도 하고, 때로는 신을 위협하기도 했던 것이다. 
  수척 골에 유왕마지(용왕맞이) 바위가 있었다고 하나 갑천 고속화도로 건설로 흔적을 찾기 어렵다. 계족산 무제에 동원되는 무구(巫具)로는 삿갓, 도롱이, 장작, 생솔가지, 풍물 등 다채롭다.

  계족산 무제는 지속되어 오다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명맥이 끊겼다. 1995년 대전대덕문화원이 재발굴 및 고증을 거쳐 원형을 복원하고 2007년 이후 매년 단오절 전후에 물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고, 환경과 생명을 생각하며 지역공동체의 무사태평을 축원하는 행사로 발전 계승되고 있다. 그리하여 계족산 무제는 기우제라기보다는 주민의 안녕기원제가 되었다.
  계족산 무제는 2007년과 2014년 한국민족예술축제에 참가해서 두 번 동상을 받은 경력이 있다. 대전의 민속 문화로 계승·발전시켜야 할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지금까지 대전시에서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하여 부사칠석놀이(‘94년)와 목상동 들말두레놀이(’96년)가 ‘대상’(대통령상)을 받은 바 있다.

   대덕문화원의 계족산무제는 기우제로 부녀자들이 주관하는 유왕제(용왕제)와 온 고을 사람들이 참여하는 무제로 구분된다. 유왕제(용왕제)는 날이 가물면 부녀자들이 마을단위로  지냈다. 부녀자들의 유왕제는 물을 관장하는 용신에 대한 의례로써 물까부르기와 날궂이로 구성되고, 마을의 신성한 샘과 용소(냇물)에서 올려졌다. 그러나 하지가 지나고 초복이 다가와도 비가 오지 않으면 좋은 날을 택일하여 회덕의 진산인 계족산 날망(상봉)에 올라가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을 주민 모두가 참여한 가운데 돼지 머리와 삼실과일 등 제물을 제상에 진설해 놓고 간단하게 유교식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서너 개씩 준비해 간 장작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불을 놓으며 기우제를 지냈는데, 흔히 군 단위로 주최하여 수십 개의 마을이 밤중에 불을 놓기 때문에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양기(陽氣)인 불로 음기인 비구름을 부른다는 의미가 있다. 또 삿갓을 쓰고 짚으로 만든 도랭이(도롱이)를 입고 물병의 물을 뿌려서 삿갓과 도롱이를 적시는 방법이 동원되었다. 이는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처럼 옷을 적시며 비가 오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유사한 현상은 유사한 결과를 낳는다는 유감주술에 따른 방법이다. 기우제 참여 인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여성과 노인을 제외한 계족산 일대 마을 남자들이 주재하였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계족산의 기운이 영험하고 봉우리에 명당이 많아서 사람들이 몰래 평장(또는 암장, 봉분을 만들지 않고 시신을 안장하는 것)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때마다 어김없이 마을에 가뭄이 들어 이를 의심한 주민들은 무덤을 찾아내어 파내고 기우제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계족산 무제는 비가 내려 농사가 잘 되도록 하기 위한 염원에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계족산에 무제를 지내는 날은 읍내동은 물론 인근의 대화, 오정, 중리, 송촌, 법동, 와동, 연축, 비래, 신대 등 회덕일원의 마을이 모두 참여하였다. 당일 풍물패를 앞세우고 읍내동에 모이는데, 각자 장작 서너 개비를 가지고 왔다. 각 마을의 사람들이 모이면 수백 명이 풍장을 치면서 계족산으로 올라간다.
  기우제를 지내는 장소는 계족산 상상봉이다. 현재의 봉황정이 있는 곳이 아니라 진골(長洞)에서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다. 진골은 계족산 뒤에 있다고 해서 ‘산디 말’로도 부른다. 읍내동에서 보면 봉황정이 가장 높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뒤에 있는 봉우리가 계족산의 상봉이다. 지금 무덤이 있는 자리이다. 여기에 가지고 온 장작개비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면 산이 온통 불꽃과 연기로 휩싸인다. 이때 풍물패들은 풍장을 치면서 분위기를 돋운다. 이제 계족산 무제는 대전의 전통적인 민속축제로 확고하게 자리잡아 앞으로도 해마다 단오절 전후에 개최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민의 생사를 좌우하는 것이 농사이고, 농사를 좌우하는 것이 비였기 때문에, 기우제는수리시설이 부족하던 시기에 전국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전통적인 민속의례였다. 실제로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산리의 수암산, 충남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와 신대리 마을의 남쪽 야산, 임하댐 건설로 수몰된 경북 안동시 임동면 지례리 등과 같은 지역에서도 유교식 기우제를 지내고 있었다.
  기우제는 신에게 호소하거나 화해하거나 대항하여 비를 얻기도 하고, 유사법칙과 음양오행을 통하여 비를 유도하는 등 방법이 복합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기우제는 생존과 직결된 절박한 상황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취할 수 있는 온갖 수단과 방법이 다 동원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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