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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님들아, 문제는 민주주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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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님들아, 문제는 민주주의야!”
  • 중앙매일
  • 승인 2016.04.06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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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송대홍 기자
▲ 태안 송대홍 기자

 제후국들이 천하의 패권을 두고 약육강식의 경쟁을 벌이던 중국 전국시대,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인 한(韓)나라에  소후(昭侯)라는 군주가 있었다. 그가 하루는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왕의 모자를 담당하는 관리가 소후가 추울 것을 염려하여 옷을 덮어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왕이  누가 자신에게 옷을 덮어주었냐고 묻었다. 신하들이 모자 담당관이 그랬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소후는 왕의 의상 담당관과 모자 담당관 모두를 처벌하였다. 의상 담당관은 응당 자기가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모자 담당관은 제 일이 아닌데 월권을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조직경영은 모름지기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거해야 함을 강조할 때 많이 인용되는, 『한비자』에 나오는 유명한 일화이다. 한비자의 생각은 업무가 명확히 분장된 관료 시스템을 먼저 확립하고 해당 직책에 임명된 관리가 규정된 업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따져 군주가 이에 따른 상과 벌만 정확히 행사한다면 국가경영은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사적인 판단에 따라 자신의 권한을 벗어난 일을 행함으로써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무시한 죄목이다. 국가경영은 인치(人治)가 아니라 법치(法治)에 의거해야 한다는 동양 법가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관점이다.

그럼에도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에 희망을 거는 정치를 고집한다면 이는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처럼 나무그루터기를 지키고 앉아 토끼가 걸려 넘어지는 요행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비자는 비판한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해진다.  보통의 군주가 오더라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는 상시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이 한비자의 법치사상에 깔려있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요약하자면, 한비자는 시스템을 상수로 하고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을 변수로 하는 통치론을 구상한 셈이다. 운영자의 자리에 어떤 군주가 오더라도 국가가 시스템에 의해 제대로 굴러갈 수 있게 하려는 취지에서이다. 한비자의 생각이 민주주의의 문제의식과 어떤 측면에서 맞닿을 수도 있다는 발상이 발동하는 부분은 이 대목이다. 바로 ‘보통사람’을 주권자로 상정하고 ‘시스템’,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주권자에 의해 확립된 ‘절차’에 의거하여 작동되는 국가에 대한 신념을 양자가 공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책임지겠다며  전국방방곡곡에서  문제는 경제라고? 큰소리 치시는  나리님들!    경제는 경제논리로만 해결되지 않은가보오!

민주주의는 특정한 계급이나 계층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 주체가 되어 자신들이 결정한 절차에 의거하여 각자의 의사를 표시하고 합의점을 도출해가는 정치적 제도라는 사실이다. 이 점에서 민주주의의 형식상의 최소조건은 모든 구성원의 공의(公議)에 의해 확립된 절차의 준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근래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이 최소조건이 뒷걸음질 치며 삐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합의된 절차의 준수라는 원칙이 하나씩 뭉개져가고  합법적 절차에 의해 선출된 권력들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해 허수아비로 내몰리는 것도 모자라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줄을 서는 장면이 연일 연출되고, 이를 통해 공당(公黨)이 사당(私黨)으로 변질되는가 하면 정체성까지 새로 규정받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치권은 문제는 경제라며 근시안적인 진단에만 매달린다. 그리하여 한쪽에선 저들이 경제를 발목잡고 있다고 호소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대로 저들이 경제를 망쳤으니 심판해달라며 읍소한다. 내로라하는 경제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는 정당에서 경제문제는 더 이상 경제논리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상식에 처음부터 무지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 도시 요령부득이다.  이를테면 이번 장에서 한몫 잡으면 되지 다음 장까지 생각할 게 뭐 있냐는 식이다. 국가경영에 대한 어떠한 원려(遠慮)도 없이 이처럼 외곬으로 내닫는 형국에서 정치인들이 때만 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 휘두르는 그 경제에 궁극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자본이야말로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쇠귀에 경 읽기일 터이다. 그러니 한때 유행하던 패러디를 다시 한 번 호출할 수밖에. 나리님들,   “바보야, 문제는 민주주의야!(It’s the democracy,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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