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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내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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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내 의자
  • 중앙매일
  • 승인 2024.02.14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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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현 수필가.
김조현 수필가.

아침을 깨우는 알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눈을 뜨고 어슴푸레한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이 걷히고 여명이 밝아온다.

드레스 룸에서 허겁지겁 각 잡은 양복과 와이셔츠를 꺼내 입었다.

화려한 넥타이로 중심을 잡고 현관문을 나섰다.

사무실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려고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화면이 열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책상 위에는 명패도 없다. 어찌 된 일인가 내 의자가 사라졌다.

직원들을 불러 찾아오라고 호통을 쳤다. 놀란 직원들은 할 말을 잃고 뒤에서 수군거린다.

주무 팀장이 찾아와“과장님! 퇴직하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순간, 잠에서 깨었다.

꿈이었다.

장맛비가 창가에 흐르면서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얼마나 출근을 하고 싶었으면 꿈에서도 직장을 가는 꿈을 꾸었을까? 축 처진 어깨에 엄습해오는 허탈감을 감내하기 힘들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입술을 야무지게 가다듬어 본다.

새로운 삶을 개척해야 한다.

지게차운전 자격증, 전기기능사 자격증도 도전해 봤지만 젊은 사람이나 경력자가 아니면 채용해 주지 않았다.

SNS 검색을 해도 뾰족한 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일하는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퇴직한 첫날은 군대를 갓 전역하는 것처럼 좋았다.

직장 일들과 구속된 시간에 답답해 늘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쉬고 싶을 때 쉬고 국내외로 관광지를 찾아 여행도 하며 즐겁게 지냈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는지 오는 전화도 없고 전화할 곳도 없다.

반복되는 일상에 무기력해지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몸은 지쳐갔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이 나의 존재를 온통 흔들어 놓았다.

버림받은 인생인 것 같은 생각에 씁쓸한 입맛이 돌았다.

외롭고 우울한 시간이다.

되돌아보면 내 첫 의자는 초등학교 목제 의자로 시작해서 삶의 터전을 닦은 의자이다.

교실 의자는 내 인생의 기초를 다져주고 사회와의 가교를 이어준 이음 의자다.

취업 후 내 의자는 새마을 마크가 그려진 철제의자다.

팔걸이가 없는 이 의자는 천상의 계단을 걷는 사다리 의자였다.

초보 시절 좌충우돌하면서 한 계단 올라가다 떨어지고 셀 수 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사다리를 붙잡아 주던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성공적으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중년이 되었을 때 팀장 보직을 받으면서 비로소 팔걸이가 있는 회전의자를 가지게 됐다.

마침내 관리자로서 지휘봉을 받아 일하게 된 것이다.

초보 시절과 팀장 때는 피아노처럼 색깔을 분명하게 때론 색소폰처럼 자기의 소리만 냈지만, 지휘봉을 잡고 일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전체 악기의 특색을 살리고 화음도 끌어내야 부서가 빛날 수 있다.

팀과 팀 간의 협동과 실과와 중앙과의 네트워크를 구성해 추진했다.

그리하여 가는 부서마다 중앙부처 우수상과 시상금을 받아 ‘하면 된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 주는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밤새워 일했던 동료들의 아픔과 시련을 나는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보상했을까? 앞만 보고 자리 지키기에 연연했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현직 때 일하던 그 자리가 내 가정을 지켜주고 우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자리인지 그때는 왜 몰랐을까? 퇴직하고 나서야 사라진 의자가 소중한지를 알았다.

의자는 계속 바뀌면서 나와 동행했다.

퇴직 후 중소기업 회사 임원으로 또는 공공기관의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퇴직과 이직을 오가며 불안정한 직장 생활을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로운 직장에 응시원서를 제출했다.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달 중으로 채용해 발령하고자 하니 사전 인터뷰했으면 좋겠다는 전화다.

인생의 유효기간이 끝나는 것만 같아 걱정하고 있을 때 달려온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멋진 새 의자를 다시 찾게 되나 하고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소식이 없다.

회사의 입장도 알 수 없다.

사라진 내 의자를 다시 찾으려고 꿈에서 직장을 찾아갔지만, 이것도 꿈인가 싶다.

언젠가는 새로운 회사에 둥지를 틀고 산업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동료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면서 일을 해보리라 다짐하지만 새로운 의자를 언제 만날지는 알 수가 없다.

오늘 이 시간이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나와 만난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야겠다.

내가 존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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