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6 20:48 (금)
기 둥
상태바
기 둥
  • 안재신 기자
  • 승인 2024.01.04 17: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조현 수필사
김조현 수필사

“아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나요?”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팀장이 보고를 올리며 열변을 토했다. 

“자리에 앉아 차근차근 이야기해 봐요” 그제야 긴 숨을 내쉬고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군수의 결재가 끝나고, 주민 열람공고와 모든 절차를 마친 법안이다. 

그것을 ‘의회에 상정’ 하려고 하자, 상부로부터 보류하라는 통보가 왔다는 것이다. 

축산단체로부터 강력한 민원이 제기되자 입법을 철회하려는 방향으로 잡은 것이다. 

사실 증평은 과거 어려운 시절, 37사단 부사관 전역자들이 군부대의 부식 찌꺼기를 받아 돼지 사육을 하면서 축산농가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도시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축사 난립으로 인한 악취 민원이 발생했다. 

시대 여건상 일정 지역에 축사증축을 제한하고 신규축사 난립을 방지하는 ‘가축사육제한구역지정 조례’ 제정에 급제동이 걸렸다. 

축산단체가 집단으로 처리 불가를 주장하고 나서니 책임자로서는 민심도 살펴야 하는 고충도 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진퇴양난이다. 

팀장과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눈가에 촉촉한 눈방울이 떨어진 채 고개를 떨구고 말이 없다. 

직원들은 방향타를 잃고 거친 바다에서 파도를 만나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난파된 배에서 오직 도움의 손길만 기다리는 그 심정을 누가 알 것인가. 

가슴 답답하고 목이 마른다. 

지난날이 스쳐 갔다. 

실무자 시절 다수 민원에 시달릴 때 아무도 의견을 주지 않고, 결정도 해주지 않았다. 

상사들의 무책임과 지휘봉 실종 사태에 대해 좌절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다짐한 결심이 있다. 

리더의 지도력이 무너질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군민에게 돌아간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팀장을 불러 업무 추진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보고서를 다시 만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마음속으로 이번 일이 잘못되면 모든 책임은 내가 지고 일선으로 물러가겠다라는 결심을 했다. 

정책 시행 시 새로운 축산농가가 더 진입하기 어렵고, 기존 농가는 오히려 수요공급을 적절히 조정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최대한 설명했다. 

그리고 부서장 책임으로 추진하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김 과장하고 부르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지만 무슨 똥배짱일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큰소리만 치고 나왔으니 도망가던 강아지가 주인집에 가까이 오자 뒤돌아서서 으르렁대며 짖어 대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후 관련 팀과 부서에 일체 보안유지를 당부하고 군의회와 협력법안을 제정 공포해 오늘에 이르렀다. 

그때 부서직원들은 축구에서 역전승을 거둔 것처럼 환호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돌아보면, 내 가정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날들이 많았다. 

아내가 산후 우울증으로 고생하기도 했고, 아들이 사랑 때문에 아파할 때 긴 세월 가슴 찢어지는 슬픔에 잠겨 있기도 했다. 

모진 풍파에도 넘어지지 않고 고난이 닥칠 때마다 가장으로서 중심을 잡아야만 했다. 

그 희생이 가정을 든든히 세우는 기둥이 된 것이다. 

신인 문학상을 받고 저녁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아내가 말한다 “당신의 든든한 기둥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라 축하해줬다.

‘아니 옆에서 나를 응원해 준 가족 덕분’이라고 말했다. 

들에 활짝 핀 꽃들을 보면 저 꽃이 피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었을까? 세상의 바람 앞에 흔들리며 아름다운 꽃을 피웠으리라 생각해보니 그 중심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있었기에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때마다 쉬운 일은 없었다. 

시상식을 마치고 집에 오는 동안 손자들의 해맑은 모습을 바라보니 그간의 힘들었던 시간이 눈 녹듯 사려진다.

인생을 살아가며 가꾸는 동안 중심을 잡고 변화를 이끌어 가는 삶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우직하게 뿌리를 내려야만 했다. 

흔들림 없이 중심을 지킨 뿌리는 든든한 기둥이 됐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한 귀퉁이 이를 감당하는 기둥 말이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