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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해미독립만세운동 재현사업 본격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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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해미독립만세운동 재현사업 본격 추진
  • 김계환 기자
  • 승인 2024.01.0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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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역사문화관리협회 주관 해미지역 독립만세운동 재현사업 추진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던 일제강점기 당시 서산 해미지역에서 항거했던 독립만세운동 재현사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사)해미역사문화관리협회(회장 성두현)에서는 해미지역의 특별했던 독립만세운동사를 재조명하며, 당시 국권회복을 위해 기꺼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독립지사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한 해미지역 독립운동 재현사업과 연계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독립만세운동은 지난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만 천하에 공포한 독립선언을 시작으로 국권회복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이 중 해미지역에서는 지난 1919년 3월 19일 남상철(해미면) 독립지사 등이 주도했던 1차 해미시장 만세운동과, 3월 24일 해미공립보통학교(현재 초등학교) 학생들이 주도했던 특별한 국권회복 독립운동의 2차 시위 등 수차례의 독립운동이 전개됐었다.

당시 3월 19일에 실시한 1차 시위는 일경들의 협박에 의해 소규모로 진행됐었으나, 3월 24일에 실시한 2차 시위에서는 200여 명의 해미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당시 해미읍성 내에 있던 학교에서 시작해 해미우시장(한우 시장)을 돌고, 읍성 내에 있는 청허정까지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용감하고 특별한 독립만세운동이었다.

이같은 2차 시위에 참가한 200여 명의 학생들은 당시 일본 헌병들에 의해 모두 공주형무소로 끌려가서 태형 등의 폭행 속에서도 오직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애국지사들로서 27명이 옥고를 치르는 등의 중형을 감수했었다.

특히, 2차 시위를 주도한 김관용(해미면 동암리) 독립지사는 유한종(조산리) 지사, 양태준(읍내리) 지사 등과 2차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돼 공주형무소에서 1년간의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도 사찰에 숨어지내며 주민들에게 독립만세운동을 전파하는 등 독립운동을 위해 평생을 희생했다.

또, 이계성(해미면 기지리) 지사는 2차 시위 당시 등사기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등사해서 배부하며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만세운동을 추진할 것을 독려하는 등 적극 주도했다.

서병철(해미면 억대리) 지사는 대한독립단 서산지단을 설립하고 군자금 모금과 일본 장교들 저격활동을 하다 지난 1921년 11월에 일경들에게 구속돼 2년의 옥고를 치르는 등 수많은 주민들이 대한민국 국권회복을 위해 활동했었다.

해미역사문화관리협회에서는 2024년 3~4월 중에 해미지역 독립만세운동사에 대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독립운동사를 정립하고, 이후 만세운동 재현사업과 해미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등의 사업들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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