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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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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 안재신 기자
  • 승인 2023.12.05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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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현 수필가.
김조현 수필가.

호흡이 답답하다. 

숨이 멈출 것만 같다. 

이마엔 식은땀이 흐르고 말을 건넬 힘조차 없다. 

놀란 아내가 급히 119구급차를 불렀다. 병원 응급실에 실려 들어간 나는 정밀검사부터 받았다. 

의사는 가슴에 결막염이 생긴 것이라고 알려 줬다.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침상에 누워 창밖을 보니 저녁노을이 짙게 깔리고 구름 사이로 빗줄기가 내리우고 있다. 

기러기 떼가 무리를 지어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데 집에 갈 수 없음이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불혹의 문턱에선 서른아홉 살 봄날 불청객이 닥쳐온 것이다. 

직장에 출근할 수도 없고 가장으로 해야 할 가정일에도 전혀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동안 내가 아니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열심히 살아왔었다. 

남편의 빈자리는 아내가 대신하여 살림살이를 꾸려갔다. 

지인들과 친척들의 위로 방문에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직장 동료 직원은 내가 할 일들을 나눠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줬다. 

역사는 내가 만들며 사는 줄 알았지만, 내가 없어도 역사는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치료가 순탄하게 진행됐다. 

병실에 누워있는 또 다른 환자가 한의원을 소개하며 바로 완치될 것이라는 희망의 말을 해줬다. 

하루빨리 낫고 싶은 심정으로 처방받은 한약을 복용한 것이 화근이 될 줄 몰랐다. 

독성으로 간이 손상돼 소화가 잘 안 되며 복통이 생긴 것이다. 

일 년 동안 한 발짝도 걷지 못했다. 

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좌절했다. 

투병에 지쳐 삶의 희망을 잃고 모든 것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오랜 투병으로 지쳐있을 때 동료 직원들은 내 업무를 처리해 주고 정성스럽게 도와줬다. 

말벗이 돼 주는 동료들의 정성은 따뜻하고 고마웠다. 

또한, 간호직 동료는 간호뿐만 아니라 트라우마 치료까지 해줬다.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내는 이런 나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됐다. 

이 모든 배려와 도움의 손길은 아름다운 꽃향기처럼 내 마음에 큰 용기를 주고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건강한 몸으로 집으로 가는 날을 그려봤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하며 업무를 성공적으로 하고 싶은 열정이 샘물처럼 솟아났다. 

얼굴엔 희열이 가득 찼다. 

두 손을 불끈 쥐어보며 심호흡도 해봤다. 

무엇인가 할 수 있겠다는 소망이 절망의 늪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만 같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이토록 가슴에 다가올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이때 겨울 산행으로 덕유산에 올랐다. 

겨울 눈꽃이 절정이었다. 

하얀 면사포를 둘러쓴 순결한 신부의 자태를 지닌 설산의 풍경은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눈과 서리를 감싸 안고 핀 설화는 그 어떤 꽃보다 눈부시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 아래 쏟아지는 금빛 햇살을 받아 수정처럼 부서지는 눈꽃의 향연은 보석보다도 영롱했다. 

겨울 산행처럼 힘들고 어려워도 눈꽃처럼 인고의 꽃을 피우며 살아보리라.

차디찬 겨울에도 영롱하게 피어나는 눈꽃처럼 찬바람을 맞이하는 나무에도 말을 건다. 

내 말이 반가워 산들바람에 나뭇가지를 흔들며 손짓한다. 

고난의 세월을 겪고 보니 이제 알 것 같다. 

생명의 가치와 자연의 풍요로움을 거저 누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살아가면서 이웃과 동료의 따스한 손길, 넓은 마음과 봉사의 손길이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절망의 터널에서 생명의 숨결이 소중함을 알았다.

병실의 삶이 힘들었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훈훈했다. 

아픈 시간은 나를 더욱 성숙하게 했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서야 소소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됐다. 

나도 누군가에게 꿈과 삶의 꽃을 피워주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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