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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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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
  • 안재신 기자
  • 승인 2023.11.02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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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현씨.
김조현씨.

아름다운 크로마하프 선율이 울리기 시작했다. 

증평군청에서 갖는 나의 퇴임식이다. 

돌아보면, 힘든 일도 있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힘을 모아 극복한 보람도 많았다. 

정든 직장 동료들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 

기관 단체장과 동료, 가족, 지인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나를 뜨겁게 안아줄 어머니는 그 자리에 없었다. 

가슴이 먹먹하다. 

어머니가 앉아계실 자리에는 가족과 손주들이 대신하고 있다. 

그 순간 가난과 배고픔으로 시달리며 보낸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아들아! 얼른 와서 밥 먹고 학교 가려무나”

“싫어요. 맨날 먹는 조밥은 맛이 없어요” 

조밥이 먹기 싫어 투정을 부리고는 등교했다. 

한나절이 지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배고픔이 몰려왔다.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고개를 숙이니 옷소매에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얼룩진 옷 소매로 눈가를 비비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수업 중인 교실 창문가로 광목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은 어머니가 오셨다. 

내심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선생님이 알아채시고 도시락을 받아 내 책상에 올려놓으신다. 

도시락 뚜껑을 여니 노오란 조밥이 소복하게 담겨 있었다. 

배고픔을 참고, 공부하는 아들이 걱정돼 오신 거다. 

자식이 싫다던 그 밥을 그대로 가져온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속상했을까. 

보릿고개를 넘기는 어머니의 고생을 이해하지 못하는 철부지 아들이었다. 

내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돌아오시며 뒤돌아 몰래 눈물을 훔치시고 다음에 꼭 쌀밥을 해주겠다고 하셨던 목소리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부모님의 바람대로 졸업 후 첫 발령을 받았을 때다. 

공직을 잘 수행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큰 누님을 찾아갔다. 

나는 공직을 포기하고 한우 사육으로 큰 축산농장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누님은 펄쩍 뛰며 밤늦도록 나를 설득하고는 새벽에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싸릿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려는데 개들이 크게 짖어댄다. 

안방에서 불이 켜지고 방문에 그림자가 비쳤다.

“아들아, 무슨 일이냐? 어서 들어오너라!” 

잠에서 깬 어머니가 밖으로 나오셨다. 

담장 뒤에 서 있는 아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손을 잡고 방으로 들이셨다. 

다 큰 아들에게 팔베개해주고 어머니의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었다. 

그날 나를 다독여준 어머니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오늘날 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꿈속에서라도 예쁜 한복을 꼭 입혀드리고 싶었다. 

자연인으로 새로운 인생을 나서려니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한다. 

돛대 없이 바다를 항해하려는 배처럼 마음이 흔들린다. 

새로운 세상의 도전 앞에 선 나의 귓가에 “아들아 그동안 고생했다 남은 생애 더욱 멋지게 살아 가다오”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팔베개를 한 채 소곤소곤 둘려주시던 그때 그 목소리가 또다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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