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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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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꿈
  • 중앙매일
  • 승인 2023.09.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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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현.
김조현.

“아들아 돈 100만 원만 빌려줘야 되겠다” 

좀처럼 부자간에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아버지가 근심 어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간절한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은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내게는 결혼자금으로 은행에 저축해 모은 100만 원이 조금 부족한 돈이 있었다. 

“아버지 적금 해약하고 다음 달 봉급까지 미리 받아서 드릴게요” 

“그런데 그 돈 어디에 쓰시려고요?” 

“급한데 쓸데가 있단다 지금 키우는 저 황소를 팔면 되겠지만 집안의 전재산이니 차마 그럴 수는 없다 올해 담배 농사 잘해서 꼭 돌려주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소를 몰고 들로 나가시는 아버지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았다. 

가난으로 한이 맺힌 아버지는 어린 다섯 남매를 키우느라 늘 동분서주했다. 

추운 겨울에 눈이 오면 우리 집 마당은 우선 길만 내고, 이웃 부잣집 마당을 먼저 쓸어 주셨다. 

시간을 내어 나무도 한 짐 해서 명절 때마다 마당에 가지런히 쌓아 놓으셨다. 

어린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다. 

어느 날 화롯불에 고구마를 구워 주시는 어머님께 나의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농토가 없으니 그 지주의 눈도장을 받아 놓아야 논과 밭을 얻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어머니는 알려줬다. 

생계가 어려웠던 그 시절은 농토 임대도 이웃 간에 경쟁이 심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살림을 모은 아버지는 이웃집 송아지를 한 마리 얻어 애지중지 키우셨다. 

외양간을 얼마나 깨끗이 관리하셨던지 송아지 털이 윤기가 자르르 흐를 정도였다. 

무더운 여름이면 수시로 목욕을 시키고, 털 관리를 정말 열심히 하셨다.

소 풀을 베어오는 것과 소죽을 끓이는 것은 어린 우리가 당번이었고, 그것이 일상생활로 이어졌다. 

그렇게 키워 일소가 되면 농사를 짓고, 겨울이 오면 팔고, 또 송아지를 다시 사서 키우며 재산을 불렸다. 

소는 우리 집 전 재산 1호요 아버지 인생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가난의 대를 물려주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몸이 부서지는 줄도 모르고 황소처럼 열심히 일만 하셨다.

산과 들에 진달래가 온 누리를 덮고 꽃향기가 봄바람 따라 코끝에 스미는 날이다. 

평소처럼 배낭을 메고 물길 따라 산길 따라 계단을 걸었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진다. 

오르고 한참을 올라도 끝이 없는 저 계단이 내 인생길 같아 보였다. 

‘어찌 이리 등산길이 힘들고 어려울까? 여기서 내려갈까?’ 하고 멈추어서 땀을 닦으며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였다. 

‘아니야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을 가 봐야 하지 않겠나?’ 누군가 말하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왔을까 숨을 내쉬고 바라보니 고개 넘어 대궐 같은 큰 집이 보인다. 

누가 이 산중에 저렇게 큰 집을 짓고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저기에서 하룻밤 쉬어 가보자 하고 집에 들어가려고 할 때 하인이 길을 막는다. 

어떻게 왔느냐고 묻기에, 등산길을 잃어 쉬어가려 한다고 하니 주인 허락을 받아 오겠다며 다녀온단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니 마당에서 하인들은 각자의 일에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 저 멀리 대청마루에 한 노인이 앉아 고기 안주와 술상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영락없는 아버지 같았다. 

여주인이 대문을 열고 나오는데 깜짝 놀랐다. 

엄마다. 

나도 모르게 와락 끌어안고 울었다. 

어머니가 안아주며 말했다. 

“아들아, 기다리고 있었다 고맙다 네가 아버지께 준 그 돈으로 이곳에 집을 마련했단다 젊어 고생했는데 이제 아들 덕분에 영화를 누리고 산다 어서 아버지께 가자” 내 손을 잡아끈 순간 잠에서 깨어났다. 

아쉽고 허탈한 꿈이었다. 

밖을 내다보니 창문 사이로 햇살이 비치고 꿈속에서 만난 아버지가 새삼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살아생전 어머니와 다정하게 손잡고 보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꿈속에서 다정한 모습으로 찾아오셨는가 보다. 

사랑의 표현이 서툴렀던 아버지는 그 적은 돈으로 엄마에게 마지막 사랑의 선물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전 누리지 못한 정을 마음껏 누리고 사는 것을 꿈속에서라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편하게 해주고 싶은 간절함에 아버지에게 그 돈이 꼭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어 꿈속에 찾아오셨나 보다.

황소처럼 일하고 가장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아버지의 인생길을 생각한다. 

보고 싶은 아버지의 마지막 꿈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아버지의 역할을 얼마나 잘 감당했을까? 자식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어떤 고민을 하고, 아내와 의견 충돌을 해 무엇을 걱정하며 살고 있는지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나 역시 아버지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 손끝과 허리가 아파도 쉴 틈조차 없는 세월을 보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줄은 정말 몰랐다. 

벽에 걸린 사진 속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눈빛을 마주하니 그리움만 뜨겁게 달아오른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달리는 열차에서 탈출해 일제 징용을 피할 수 있었고, 6.25 전쟁 때 생존 하지 못했으면 너는 세상에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힘겨운 시대를 살아내고 가난한 농부로서 고단한 삶을 헤쳐 나오느라 인생의 전부를 내게 내어 주신 아버지다. 

용돈 한번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빌려준 돈을 돌려받으려 했던 속 좁은 생각에 못내 목젖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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