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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각하(照顧脚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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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고각하(照顧脚下)
  • 중앙매일
  • 승인 2022.05.0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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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월(서산 약선사 주지)
혜월(서산 약선사 주지)

중국 송나라 때, 임제종의 중흥조인 법연(法演) 선사가 혜근(慧懃), 청원(淸遠), 원오(圓悟) 등 세 명의 제자들과 밤길을 가고 있었다. 이때 바람이 불어 등불이 꺼졌다. 짙은 어둠 속에 처하게 되자, 스승이 제자들에게 법거량을 시작하였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

혜근이 첫 번째로 말했다.
“광란하듯 채색 바람이 춤을 추니 앞이 온통 붉사옵니다.(彩風舞丹宵)”

두 번째로 청원은 “쇠 뱀이 옛길을 가로질러 가는 듯 하옵니다.(鐵蛇橫古路)”라고 하였다.

이는 자기들이 처한 처지에 대한 설명이지 상황 타개를 위한 의견제시가 아니다. 원오가 답을 내놓았다.

“조고각하!”
‘조고각하’란 멀리가 아니라 바로 발아래를 잘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깜깜한 밤중에 불도 없이 길을 가야 하는데, 문제해결과 거리가 먼, 뜻 모를 말만 주절댈 것이 아니라, 각자 발밑을 살펴서 걸어가야 한다는 원오의 주장은 당연한데도 멀리서 구하려는 이의 의표를 찌른다.

‘조고각하’는 언제부터인가 산사의 신발 벗어 놓는 댓돌 위에 내걸려, 신발을 가지런히 잘 벗어 놓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지만, 실제는 밖에서 깨달음을 구하지 말고 현재 처해있는 상황을 스스로 살펴 자신에게서 구하라는 법문이다.

밖에서 구하려면 멀다. 안에서 구해야 실마리가 쉽게 풀린다. 즉 밖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세계를 돌이켜 반성하는 ‘화광반조(廻光返照)’를 통해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한치 분간이 안 되는 미망 속에 처해있다면 멀리 볼 것이 아니라 발아래를 잘 살피고, 밖이 아니라 나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조고각하는 남을 탓하지 않고 잘못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나간다는 ‘반구저기(反求諸己)’, 남을 꾸짖기보다 자신을 돌이켜 보고 반성한다는 ‘내시반청(內視反聽)’, 문을 닫고 자신의 잘못을 생각하라는 ‘폐문사과(閉門思過)’,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몸가짐을 살피고 반성한다는 ‘삼성오신(三省吾身)’ 등과 통한다.

조고각하를 모르니 내로남불이다. 자기 발밑을, 자기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삶을 통찰해야 하는데, 자기는 돌아보지 않고 남탓만 하는 것이 문제다.

위정자들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으며,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안중에는 나와 내 패거리들뿐이 없는 사람들 같다. 내가 한 일을 돌아보지 않고 남의 탓만 하는 것이 내로남불이다. 내로남불의 반대 의미가 바로 조고각하라고 알면 제대로 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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