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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革命 60周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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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革命 60周年....
  • 중앙매일
  • 승인 2021.12.1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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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5월16일, 혁명이 일어났다. 2021년 5월 16일, 5.16혁명 60주년 기념일이었다.

5월 16일 이른 새벽 한강을 건너온 군부의 출동은 쿠데타였다. 아직 잠을 깨지 않은 새벽 공기를 타고 긴장된 어조로 KBS 방송이 흘러나왔고,「혁명공약」이 발표됐다. 박종세 아나운서의 목소리였다.

혁 명 공 약
1.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태세를 재 정비 강화한다.

2.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 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한다.

3.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패한 국민 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 잡기 위해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킨다.

4. 절망과 기아 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 력을 경주한다.
5. 민족적 숙원인 국토 통일을 위해 공산주의와 대결할수 있는 실력배양에 전력을 집중한다.

6.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을 조속히 성취하고 새로운 민주 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이룩하기 위해 우리는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4.19 학생들의 젊은 피가 얼룩진 그 바탕 위에서 집권한 민주당은 신·구파로 나뉘어 간단없는 정쟁을 일삼아 국민의 기대를 몰각했다.

아직 전쟁의 여진이 슬어지지 않은 살풍경한 도시에서 마음껏 비상하고 싶은 젊은이들은 절망의 늪을 기면서 앞날이 암울했다. 날이면 날마다 일어나는 데모 등살에 시민은 공허했고, 정신적인 진공상태에 함몰되고 있었다. (심지어 국민학생들 까지 거리로 나와“데모하지 말자는 데모까지 일어났다.)

한창 보릿고개를 넘고 있던 그 시기에 사람들은 배가 고팠고, 특히 농촌에서 춘궁기에 아사자가 빈발했다. 배고픈 아픔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으랴.

4.19를 전매 특허처럼 앞세우는 일부 학생들의 토족은 국회 의사당까지 점령해 의정을 농단했고, 남북통일 회담을 한다면서 북한 학생들을 판문점으로 손짓하고, 이쪽에서도 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사회에 희망의 새싹이 트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그때 군부가 발표한 혁명 공약은 신선하였고, 암흑으로 밀폐된 공간에 한줄기 빛으로 비쳐, 나온 탄성이“올 것이 왔다”였다. 처음, 한강을 건너 온 일단의 군사 행동은 쿠데타였다.

“올 것이 왔다”는 사람들의 기대 속에 쿠데타는 군사혁명으로 영글어갔고, 마침내 국민혁명으로 승화돼 갔다.

새마을 운동, 중화학공업, 자주국방, 자립경제, 수출입국, 압축성장, 국위신장… 당연히 혁명의 성과였다. 절망의 늪에서 혁명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룰 수 있었으랴.

특히 새마을 운동은 농촌에 국한되지 않고, 도시 새마을 운동, 공장새마을 운동, 직장 새마을 운동 등으로 확산돼 국민의 의식개혁과 자조, 자립, 협동정신 함양에 기여했으며, 전 국민이 함께 참여했으므로 국민혁명의 표상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때 그 혁명공약에서 지적한 사회상과 오늘의 사회를 한번 대비해 봄직 하지 않은가. 무엇인가 느끼는 바가 있다면 다시 한 번“올 것이 왔다”는 탄성을 회고할만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것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될까.

성숙했다고 해야 할지, 비굴하다고 해야 할지… 무릇 역사인식에 균형 감각이 결여돼서는 안 된다.

모든 캘린더와 수첩을 펼쳐보라. 5월 18일은「5.18민주화 기념일」이 선명하게 표기돼 있다. 5.18민주화 운동도 우리 역사에 참으로 소중한 모멘트였다고 생각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5.16혁명도 당연히 우리 역사상 큰 획을 그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불균형에 균형을 잡는 시도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본다.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모으고, 동쪽과 서쪽이 허심 탄회하게 손을 잡아야 한다.

오늘 이 시대에 「5.16」과 「5.18」의 악수는 국민 화합의 명이고 실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상호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역사 발전의 보완 관계임을 합의해야 한다.

근대화와 민주화는 동전의 앞뒤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5.16」과 「5.18」의 악수, 5월의 화두에서 진일보하여 21세기 중반의 화두가 되기를 바란다.

「5.16」혁명에 직접 관여한 바는 없다. 다만 새마을 운동에 선도적으로 참여하였다. 5.16 60주년에 너무도 공허하여 소회를 적어보는 것이다.

그때 그 시대를 살았고, 오늘 이 시대에도 살아있는 우리 세대가 당연히 깨우쳐야 될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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