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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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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 송대홍 기자
  • 승인 2021.11.23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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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죽는 것도 실력이라고들 한다. 요즘 들어 장례식장에 갈 일이 많아졌다.

주변에서 자주 보던 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새삼스레 오래된 숙제를 꺼내 들었다. 끝까지 존엄하게 살다 가려면 과연 무엇이 필요한가.그 답을 찾은 곳은 또 다른 장례식장이었다. 사람이 죽는 것도 실력이 있어야 돼.

그런면에서 우리 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실력으로 끝까지 스승 노릇 하셨어."고인은 반년 전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 을 받으셨다고 한다. 갑자기 닥친 죽음 앞에서 당황 할 법도 하지만 그분은 차분히 자신의 마지막을 준 비했다. 혼자 살 아내를 위해 자그마한 집으로 이사를 하고, 재산을 정리해 자식들에게 선물처 럼 조금씩 나눠주셨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남기셨 다.

"사람은 마지막까지 잘 아파야 되고, 잘 죽어야 된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플 비용, 죽을 비용을 다 마련해 놨다.

너희들 사는 것도 힘든데 부모 아플 비용까지 감당 하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아버지가 오랫동안 준비해 놨으니 돈은 걱정 말고,나 가기 전까지 얼굴만 자주 보여줘라"

그리고 그분은 스스로 정한 병원에 입원하셨다. 임종을 앞두고선 의사에게 심정지가 오면 연명치료를 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고 문서에 사인까지 직접 하셨다.

자식들에게 아버지 연명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아픔을 절대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 였다.

임종이 가까워서는 1인실로 옮기기로 미리 얘 기해 두셨다.

자신이 고통에 힘겨워 하는 모습을보고 누군가 겁먹을 수 있으니 가족들과 조용히 있고 싶다는 뜻이었다. 친구의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있다.

가족들 모두에게 각각의 영상편지를 남긴 것이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그리고 손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작별인사를 하며 영상 끝에 이런 당부를 남기셨다고 한다."사랑하는 딸아,아버지가 부탁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하늘을 봐라.아버지가 거기 있다.

너희들 잘 되라고 하늘에서 기도할 테니꼭 한 달에 한번씩은 하늘을 보면서 살아라. 힘들 때는 하늘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라"

그 분은 자식 들에게 마지막까지 존경스러운 스승의 모습으로 살다 가셨다.

어떻게 아파 야 하는지,죽는 모습이 어때야 하는지,존엄성을 지 키면서 인생을 마무리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 주신 것이다. 우리는 주로 뭔가를 '시작'할 때 준비라는 단어를 붙인다. 출산 준비, 결혼 준비, 취업 준비….그러나 마무리에는 준비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은퇴 준비가 그토록 허술하고 임종 준비라는 단어는 금기시 돼 버린 이유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60대 이후를 남은 힘, 남은 돈으로 살려고 한다.

그러나 자식들 공부시키고 먹고 살기 바쁜 현실을 버티다 보면 어느새 거짓말처럼노후가 눈앞에 다가와 있다. 그 때부터라도 정말 '잘 죽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식들 형편에 따라서 아프고,자식들 돈에 맞춰서 병원에 끌려 다녀야 한다.

그 때문에 있는대로 자식들에게 주지 말고, 내 자존감을 지키고 마지막을 잘 정리 할 수 있는
비용을 반드시 남겨둬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에게 후회와 원망 대신 아름다운 추억과 스승다운 모습을 남길 수 있도록,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면 미소 지을 수 있도록 마지막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육십이 넘으면 고집이 세져서 남의 말은 안 들으니 스스로라도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인간의 삶과 죽음에대한 통찰이 담긴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다.

그렇게 애써야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죽을것인지 결정 할 수 있다.

잘 죽는 것이야말로 한 사람 의 인생이 담긴 진짜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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