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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유적 지정 권고에 대한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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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유적 지정 권고에 대한 바램
  • 중앙매일
  • 승인 2021.07.14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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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보존. 관리는 후대인들의 역사적 사명
유봉희   충주박물관 학예연구팀장.
유봉희 충주박물관 학예연구팀장.

“光山金氏 古文書”자료가 기록 자료로서‘충주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기를 권고 한다’는 충청북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결과로 최근에 결론지어 졌다.

고문서를 포함해 자료는 교지류, 녹패류, 간찰류, 고서류 등 총177점에 이른다. 비록 자료별로 가치차이나 보존상태의 차이는보이지만 광산김씨의 종중자료를 통해 조선시대 역사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생각되어 진다.

특히나 광산김씨 匡節公派가 광산김씨 5대종중의 하나로서 1400여년대부터 충주에 들어와서 살게 됐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지난 2019년 11월경에 금가면 김예몽 (金禮蒙), 김성원 (金性源)등의 묘소가 있는 자리에 새롭게 경모사 (景慕祠)란 사당이 세워졌다.

광산김씨 종중에서는 20세손 김예몽 대의 5분“인몽, 의몽, 예몽, 지몽, 신몽”과 김성원의 아들을 포함한, 2대뒤에 8문“백문, 숙문, 계문, 윤문, 철문, 말문, 내문, 중문”을 가리켜 5몽8문이라고 부르고 있다.

광산김씨의 5몽8문이 모두 재주와 文名을 떨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충주 박물관에서“충주의 광산김씨”로 기획전을 갖게된 까닭은 크게 3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현존하는 녹패자료는 교지에 비해서 극히 적어서 희귀성으로 볼 때 역사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당시의 녹봉관련내용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두 번째는 조선시대 지난 1726년 준 호구자료에 충주목“적화현면 (赤火峴面)...보련리 (保連里)”란 지명이 처음으로 기록된 점이다.

그후 지난 1744년 호구자료에서는  ‘老ooo’이라 하고 있어‘老隱峴面으로 보여지는데충주목 관내 보련동리 (寶連洞里),보련리(保連里)등으로 표기된 지역은 노은현면이 있을뿐 ’적화현면‘이란 지명은 1744년 전에 통합되거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충주의 지명사로 보아 지명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 가치가있는 자료로 보인다.

끝으로 앞에서 말했듯이 광산김씨가 충주 세거성씨로서 조선시대에 거주했고 그 영향으로 ’경모사‘란 사당과 관계 인물의 묘소와 ’광산김씨 팔문유허비‘등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충주지역에 있어 광산김씨의 충주 입향이 역사적으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선“광산김씨 고문서”자료가 충주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고문서자료 중에는 가치가 높은 것들이 있어 이에 대해서는차후 선별 조사해 충청북도 지정문화재로 지정 신청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더바란다면 선별된 신청 자료를 중심으로하여 지정신청서의 내용대로 종중자료 전체를 일괄 지정될 수 있도록 재차신청 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충주시향토유적으로 지정돼 있는 탑평리 갓바위 마애불, 미륵리 불두 등의 문화유산도 현지조사를통해 보존상태 등을 살펴보고 가능하다면 충주시 향토유적에서 충청북도 문화재 자료급으로 지정 신청을 추진해 보아야 할 것으로 판단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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