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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와 수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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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와 수치심
  • 중앙매일
  • 승인 2020.10.2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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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시대의 변화를 제때에 바로바로 반영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법 조항을 바꾸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절차들이 있고 필요 요건들이 충족되어야 할 테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역행해도 한참 역행하는 법 조항들이 참 많이 보인다.
그래서 그런 법에 의해 판결받은 억울하고 기막힌 사례들도 많다.
뉴스에 기사를 잠깐 보게 되었다.
“레깅스가 일상복이며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차림새가 아니라는 건데요”
“참석자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지 않았다면 성희롱이 아니다”
“손목은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신체 부위라 보기 어렵다”
일명‘성폭력처벌법’관련 판결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성적 수치심’입니다 성폭력 범죄를 판단하는 데 있어 피해자가 느끼는 성적 수치심 유무가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인데요.
이처럼‘성적 수치심’을 근거로 한 처벌 조항을 법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수치심이란 다른사람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 또는 그런일 이라고 한다. 수치심이 마치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의 잘못으로 부터 비롯된 것처럼 기술되어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최나눔 정책팀장도‘성적 수치심’에 대해“성폭력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하고,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통념을 강화시키고 확산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성폭력 피해자 관련 지침서나 피해자 치료 단계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점으로는 성폭력을 당한 것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인지시켜 주는 것이다.
즉 옷차림이 어떻든 늦은 시간에 밤거리를 다니든 그 행동의 문제가 아니며, 성폭력이든 성추행이든 분명한 것은 가해자의 잘못이라는 점이다.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이 흔히 하는 말로 맞을 짓을 해서 때렸다고 한다.
그러나 맞을 짓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때리는 사람의 주관적인 관점이며 그러므로 때리는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때리는 사람의 잘못이다.
성폭력도 동일한 범주 안에 있다. 폭력을 저지른 사람의 잘못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다른 사람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감정을 느꼈을 때’에만 성폭력으로 인정한다는 법적 논리는 기본적인 인권도 반영하지 못하는 구시대적 법률이라 할 수 있다.
손목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부위가 아니어서 만져도 괜찮은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면 내 사진을 남이 몰래 찍어도 괜찮은가?
뉴질랜드 대사관 남자직원의 엉덩이를 만졌다는 외교관, 뉴질랜드 측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친한 남자끼리 그럴수도 있는 일이라고 옹호하는 정치인, 그들의 눈높이에서라며 가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엉덩이를 만졌다는 뉴스에 몹시 충격을 받았다.
법조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외교관도 아닌 평범한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은 어느 누구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모든 신체적 접촉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교육도 없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서 직원의 엉덩이를 치고 다니는 이 분의‘그럴 수도 있는 일’때문에 국제사회에서의 수치심은 국민의 몫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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