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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하 전 청장, 마곡사 원경스님 찾아 담소나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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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운하 전 청장, 마곡사 원경스님 찾아 담소나눠
  • 이철재 기자
  • 승인 2020.01.19 15: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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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성 원경스님은 황 전)정장에게 '묵빈대처'(默賓對處) 주문

황운하 전 대전경찰청장 모습
황운하 전 대전경찰청장 모습

지난 15일 SNS 를 통해 "방금 경찰청에 사직원을 제출했다."고 밝힌 황운하 대전경찰청장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제가 검찰수사를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를 여전히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검찰은 다음 날인 16일에 황 청장의 출석을 요구했다.

다음날 황 전)청장의 발길은 『대한민국 1호 경찰』 백범 김구선생의 자취를 간직하고 있는 태화산 마곡사로 향했다.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으려다, 첫 번째 옥살이를 했던 청년 김구가 스물세 살의 겨울을 보냈던 곳. 1896년 3월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의거로 수감된 백범(1876~1949년) 선생이 1898년에 탈옥한 후,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승려 생활을 하며 머물렀던 곳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 겨레의 큰 스승이다. 백범을 흔히 '민족의 지도자'라고 부른다.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과 통일 운동에 앞장서면서 한평생을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범이 『대한민국 1호 경찰』이라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백범은 1919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 안창호 선생에 의해 초대 경무국장으로 임명됐다. 경무국장은 현재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직책.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교민들을 보호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키며 밀정을 찾아 내서 처단하는 업무를 총괄했다.

백범은 청년 20여 명과 함께 3여 년 동안 이런 업무를 수행하면서 임시정부 경찰의 기틀을 확립했다. 경무국장의 임기는 1922년 8월까지 이어졌다. 경무국장이었던 그는 일본의 최대 위협이었다.

황운하 전)청장은 마곡사 백범명상길(솔바람길)을 걸어, 주지 취성 원경스님(대한불교조계종6교구본사 마곡사주지)과 차담을 나눴다.

대한불교 조계종 6교구 마곡사 취성 원경 주지스님 모습
대한불교 조계종 6교구 마곡사 취성 원경 주지스님 모습

취성 원경스님은 황 전)정장에게  '묵빈대처'(默賓對處)를 주문했습니다.

잘못한 사람에게 바로잡아주려고 싸우거나, 벌주거나, 고치거나, 꺾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저 대응하지 않고 외면하고 침묵으로 대처하면 스스로 깨달아 고치게 된다"는 부처님 계율을 스님은 강조했다.

아울러 취성 원경스님은 지식보다는 '지혜'를 당부했다.

"지식만 있으면 요령꾼이 된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갖고 득과 실을 따진다. 그런데 지혜로운 사람들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간다. 그것도 나에게 이로운 길이 아니라 남한테 이로운 길을 간다"면서 그게 바로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또 "정치인들은 당리당략만 따진다. 민초들의, 국민들의 민생을 외면하면 안된다" 며, "지식보다는 지혜를 가지고 잘 보듬어 갈 것"을 당부했다.

마곡사 주지(취성원경)스님과 차담을 나누고있는 황운하 전 청장 모습
마곡사 주지(취성원경)스님과 차담을 나누고있는 황운하 전 청장 모습

한편, 황운하 전)청장은 SNS를 통해 "명예퇴직원을 제출한 지 어느새 두 달, 35년 공직생활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고, 공직자에게는 적지 않은 목돈인 명예퇴직 수당을 받아 20년 된 낡고 녹슨 승용차를 바꾸려던 저와 제 가족의 소박한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명퇴 후 총선출마 준비를 하려던 계획도 차질이 생겼다."는 심경을 밝힌 바 있었다.

이제 명퇴가 아닌 일반 사직서를 제출한 그의 발걸음이 어디로 향할지 걸음 걸음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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