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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의 매력(魅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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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팝나무의 매력(魅力)
  • 정광영 기자
  • 승인 2019.06.11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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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영환 씨

더위가 가까이 오는 초여름, 청주 진재공원 언덕에는 두세 그루의 이팝나무가 우뚝 서 있다. 푸르른 잎은 바람결에 조금씩 흔들리며 지나가는 참새들에게 손짓을 하는 것 같다. 참새는 이팝나무에 날아와 잠시 앉았다가는 작은 기척에도 놀란 듯 금방 날아간다. 어디서 왔는지 다람쥐 한 마리가 이팝나무 가지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먹을 것을 찾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이팝나무의 새하얀 꽃송이가 소복 소복이 쌓여 있는 모습은 마치 흰쌀밥을 연상케 하여 이밥 나무라고도 불린다. 이처럼 이팝나무는 훤칠한 키에 시원한 느낌을 주고 흰 쌀밥의 이미지로 부(富)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나무이다.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 울타리에는 이팝나무가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정원수로 심은 것이다. 자그마한 키에 5월 중순이 되면 파란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꽃이 가지마다 예쁘게 피었다. 하지만 이팝나무 꽃이 활짝 필 무렵에는 1년 중 가장 먹고살기가 힘든 보릿고개가 어김없이 다가왔다. 어머니께서는 집 앞의 텃밭에서 군데군데 노랗게 익은 보리 이삭을 골라 가위로 잘라 앞치마에 담고 집으로 오셨다. 부엌에 있는 절구통에 넣고 나무절구공이로 찧어 보리쌀을 만들었다. 옛 농경사회에서 어려웠던 시절의 식량을 해결하는 모습이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소설 같은 이야기다. 모처럼 도심 공원에 있는 이팝나무의  새하얀 꽃송이를 바라보니 옛날 가난했던 시절의 흰쌀밥이 그려졌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이마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무더운 여름 날 이다. 손자와 함께 가까운 공원을 찾아 이팝나무 그늘로 갔다. 기다란 나무의자에 부채를 든 노인들이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나는 나무의자 끝자락에 손자와 같이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무심코 바라본다. 시원한 반소매를 입은 사람, 삼베옷을 입은 노인, 반바지를 입은 젊은이, 그리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어린 아기 등 다양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팝나무 그늘을 많이 찾는다. 새하얀 아름다운 꽃과 큰 키의 나무로 그늘 막을 넓고 시원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팝나무는 많은 사람들에게 더위를 식혀주는 쉼터이며 정자목(亭子木)이다. 가끔 이팝나무 가지에는 둥그런 까치집이 보인다. 어느 때는 새끼 까치들이 배가 고픈 듯 둥지에서 어미 까치에게 종알거리며 입을 뾰족이 내민다. 어미 까치는 먹이를 새끼의 입에 넣어주고 또다시 풀숲으로 날아간다. 다른 새끼 까치에게 줄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니 어미와 새끼까치의 혈육으로 맺어진 정(情)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했다. 경남 김해시의 오래된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7호로 지정을 받고 지방자치단체의 관리와 함께 보호를 받는다. 그만큼 이팝나무는 소중하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청주에는 동부우회도로에 약 10km 정도의 이팝나무 가로수 길이 있다. 여름철 더운 날씨에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들에게 아름답고 시원한 느낌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4계절의 흐름에 따라 여름은 지나가고 가을이 다가온다. 결실의 계절이라고는 하지만 이팝나무는 쓸쓸한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공원과 도로가의 이팝나무는 아름다운 꽃과 잎은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바람이 부는 날은 새하얀 꽃잎이 많이 떨어진다. 바람결에 날리며 떨어지는 그 모습은 마치 겨울철의 함박눈이 쏟아지는 것 같다. 지나는 사람들은 이팝나무 꽃잎을 손바닥으로 받으며 즐거워한다.
초겨울이 되면 새하얀 꽃잎도 나뭇잎도 모두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나무 밑으로 떨어진 꽃과 잎은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며 갈 곳을 잃은 나그네처럼 방황을 한다. 지나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홀로 뒹군다. 더욱 도로 가의 이팝나무 꽃잎은 지나가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와 함께 바퀴에 눌려 그 아름다웠던 모습을 잃기도 한다. 아름답고 소중했던 시절은 다 지나가고 많은 사람들로 부터 외면을 당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난 느낌이다.
공원이나 길가에 수북이 쌓인 이팝나무 꽃과 잎은 미화원의 빗자루에 쓸려 준비해온 마대(麻袋)에 담겨진다. 명(命)을 다한 것이다. 소각장으로 갈지? 아니면 매립장으로 갈지? 그것도 아니면 농촌의 농사용 퇴비로 가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소각이나 매립은 피하고 농촌의 농사용 퇴비로 가서 농작물의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기야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 ? 그저 바랄 뿐이다.
이렇듯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이팝나무는 겨울이 다가오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무관심의 굴레 속에서 외롭고 쓸쓸하며 고독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이팝나무의 겨울은 내년을 위해 잠시 쉬는 휴식의 계절이다. 이듬해 봄이 되면 나무 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새하얀 꽃을 또 피운다. 아름다운 계절이 또 다시 온다. 이것은 이팝나무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매력이다. 오늘따라  고향집의 울타리에 있는 새하얀 이팝나무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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