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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를 덮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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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를 덮지 마라 !
  • 사회부부국장 권정택
  • 승인 2008.09.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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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정자들은 이 사회의 안정지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이어서 이 사회의 구성원이 느끼는 만족도는 어느 정도라고 보고 있는가. 반의적으로 불안지수와 불 만족도를 형성한 기저적 구조는 무어라 답할 수 있는가. 그 치유책은 무엇인가. 많은 구성 요인이 있겠으나 이 시대에 함께 사는 이 땅에서 나랏일에 참여를 거부한 40%의 방관자이자 이 비협조 세력은 무엇에 응어리졌는가. 등 돌린 이들은 앞으로 어떠한 영향을 줄는지 왜 신속한 검토와 대책이 없는가.

이를 말 하는 것은 국난에 해당하는 심대한 심각성임에도 별일이 아닌 양 덮기만 하고 문제가 없는 양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간과하는 우(愚)는 사회 전반에 성장 동력의 저하(低下)나 추진 동력의 상실을 가져오는 매우 위험한 일인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응어리 세력들은 국책추진이나 시행 면에서 적극적이지 아니 한 자세로 지수와 능률을 떨어뜨리는 일들을 노출할 것이며 음성적으로 나름대로 확대를 꾀하여 큰 걸림돌의 역을 해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사안에 깊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부는 타당한 많은 반대 여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 사면이라는 화합한다는 카드를 기어코 빼들었다. 이 내용을 보면 얼마의 정치인과 경제인의 구명이 주(主)였고 나머지는 목적의 실효성이 의문시 되는 들러리였다. 객관적으로 전자는 정치발전과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 하겠다고 다짐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고 그 분위기의 여파를 계산에 넣었다고 보자. 구색용 후자는 술 마시고 취소된 면허를 살려줬다고 민심 달래기 민심 챙기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 이러한 사면의 남발은 사법부의 사려 깊은 판결과 법 제정의 취지를 쉽게 침해하는 일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법도 사법부도 존중되지 않아 다음 사면에는 또 그 다음 사면에는 하고 대기하고 이용하려는 무리의 줄 잇는 현상과 확산되는 풍조는 어찌 할 것인가. 여기서도 있으면 무죄 없으면 유죄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래서 형식적 화합은 형식으로 흐른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진정한 화합의 근원적인 문제로의 접근이 아닌 겉치레 조처는 오히려 생각 깊지 못함을 보이고 그 결과 실소를 주위에 크게 듣게 할뿐 이였다. 투표로 표현되는 정치 참여를 포기한 사람 기권한 사람 방기한 사람 대동소차하나 모두가 등 돌린 사람들이라는 거대한 한 집단이다. 이 40%를 빼놓고서는 어떠한 화합을 위한 시책도 그 효용을 보기 어렵지 아니 하겠는가.

이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진정한 화합의 근원이지 않겠는가. 먼저 이 소외층 무리의 배경이 되는 기저(基底)의 밑바닥 인심을 생생하게 적어 보자.

1)은 그 자(者) 그 자(者)라는 것이다. 신뢰감이 없고 기대감도 없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서 누가 하든 별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2)는 끼리끼리 다 차지할 것이라는 거다. 찍어 줄 때 뿐이라는 것이다. 객관적 인식이나 의식수준과 피부에 닿는 대중 정서의 흐름을 무시하고 측근에 쏠린 편향 부당 인사를 강행하여 세 심기 세 불리기를 통해 독식 한다는 것이다. 비웃음과 소외감의 표출이다. 즉 40%는 외롭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3)은 카리스마를 갖은 인물의 감복시키는 비범한 영도력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문 해보라 자신은 세종 임금 같은 성현인가 이순신처럼 백성을 사랑 하는가. 정치가들은 왜 국민을 불쌍하게 만드는가. 왜 기댈 곳 없어 외롭게 하는가. 국민을 위해 몸을 던질 수 있는가. 차별화 된 인물을 찾는 민심을 읽었으면 말을 아껴서라도 후천적 카리스마를 만들라. 그리고 특혜의 구조를 깨라. 신이 준 자리, 철 밥통도 깨라. 기가 찰 노릇이며 위축되고 더욱 외로워진다.

이 세 가지가 채워져야 대화합이다. 40% 해결이 성장 동력이며 진정한 화합이다. 이를 다시금 못 본양 덮지 말자.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어루만져 치유를 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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