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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예술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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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예술인 이유
  • 인터넷뉴스팀
  • 승인 2008.09.0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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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예술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8월 27일 미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연출됐던, 버락 오바마를 만장일치로 대선 후보로 지명하는 대회의 모습은 예술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친미파적인 발언이라고 욕을 먹을지 몰라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예술이란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 벅찬 감동과 감격, 환희, 뭐 이런 것을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미술품을 보면서 미술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이의 눈에도 무엇인가 확 들어오면서 마음을 사로잡아, 두고두고 보면서 감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음미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예술일 것이다.

기존의 예술 대상 부문이 아니더라도, 정치 부문이 우리 눈 앞에서 살아 움직이면서 그 자리에 참석한 이들에게 벅찬 감격을 전해줬다면 그야말로 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감격이 불쾌하고 보기 싫고 기분 나쁜 것이 아닐진대 살아있는 예술이라고 한들 누가 손가락질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날 덴버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연출된 힐러리 클린턴의 살신성인 모습에서 민주당 대의원들은 물론 미 전역에서 이를 지켜본 일반 상식을 가진 미국인들은 벅찬 감격을 받았을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한국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이었다고 한다면 역설적일까?

클린턴은 그 동안 자신을 지지하면서 버락 오바마의 대선 주자 ‘대관식’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그녀의 몸을 던져 마음을 열게 했다. 이미 전날 오바마 지지를 호소한 감동어린 연설로 오바마는 갤럽 조사에서 공화당의 존 매케인에 1% 포인트 앞선 모습으로 돌아서게 만들었던 그녀이다. 그 이전네는 오바마가 매케인에 2% 뒤지는 형국이었다.

그런 클린턴은 마침내 이날 대선 후보 공식 지명을 위한 대의원들의 호명투표(Roll call)가 진행되는 중간에 깜짝 등장했다. 호명투표는 각 주에서 참석한 대의원들이 대회장에서 자신의 주 이름을 호명하면 그 주 대의원 가운데 누군가가 지지한 후보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지지자 호명과정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당의 화합과 미국의 가치를 주장해 마음을 열게 만든 뒤 상대 경선자를 지지해야 하는 당위성을 감동적으로 호소한 그녀가 이번에는 호명투표 진행을 접고 “일리노이주 출신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 공식후보로 지명됐음을 선언할 것을 제안한다"며 만장일치 선정을 제안한 것이다.

그녀가 깜짝 등장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다 그녀가 제안한 내용은 바로 상대 경선 후보자를 만장일치로 선출하자는 제안이었기에 참석한 대의원들은 일거에 놀라움과 갑자기 몰아닥치는 환희로, 또 한차례의 감동을 만끽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을 던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을 지지해 오바마를 받아들이지 않던 대의원들이라도 이제는 거부할 명분이 없어졌다. 이후엔 축제가 시작됐다. 민주당의 축제, 민주주의의 축제였다. 자신을 던짐으로써 그녀는 미국인들의 마음에 이미 대통령으로 자리했다. 상징의 대통령인 셈이다.

그 이후에 전개된 과정은 묘사하지 않아도 괜찮을 듯하다. 이미 양식과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이후 전개된 과정이 어떠했을 것이란 것은 짐작하고 남는다. 그것이 바로 모든 이들이 바라는 정치의 묘미이며, 정치의 맛일 것이다.

갑작스레 한국 정치의 대선 경선과정과 비교되는 것이 인지상정일까. ‘경선 불복’, ‘분당’, ‘탈당’ 뭐 이런 것들이 우리들에게는 낯이 익은 단어들일 것이다. 계파 분열도 모자라 탈당이니 출당이니 하더니 이후엔 복당에 이어서도 후유증이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전에는 더 했었다. ‘후보 단일화’란 단어가 등장하더니 ‘단일화 실패’란 단어가 등장했고, 분당에 당명까지 새로이 창당돼 서로가 정통이라고 했다. 그러다 따로 출마하고, 이어 정계 은퇴 이후 다시 정계 복귀, 다시 대권도전 등등의 지루하고 역겨운 과정. 이런 과정에도 우리 유권자들은 줄줄이 붙어다니며 배알 없이 표 주고 돈 받고 후회하고 했던 기억뿐이다.

명분과 상식이 통하는 정치가 어려운 것이 한국 정치이다. 가장 간단한 것이 명분과 상식대로 움직이는 것이지만 한국의 현실정치에서는 그것이 가장 어렵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가장 간단하게 명분과 상식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 감동을 주는 것이며, 클린턴처럼 감동을 가져다 주는 것이리라. 아무리 친미파, 자주파가 으르렁댄다고 해도 미국의 힘은 바로 클린턴처럼 움직이는 정치인이 있다는 데 있을 것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워싱턴=최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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