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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미국을 지배하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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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미국을 지배하는 지혜
  • 인터넷뉴스팀
  • 승인 2008.07.2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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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노창현특파원
미국은 참으로 복받은 나라다. 풍요로운 자연과 편리한 생활 여건과 공공서비스, 높은 수준의 교육 여건, 세계 최고의 예술문화 환경 등은 미국 시민을 세계의 일등시민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내가 매료된 것은 살기좋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다. 미국의 지도를 한번 가만히 들여다 보라. 위로는 캐나다와 아래는 멕시코를 놓고 거대한 땅덩어리를 갖고 있다. 미국처럼 거대한 국토 대부분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추워서 살기 힘든 지역은 캐나다로, 더워서 살기 힘든 지역은 멕시코로 밀어붙인 기막힌 구도가 아닌가. 겨울에는 뉴욕도 제법 춥고 눈도 많이 오는데 캐나다에서 살기 좋다는 토론토와 몬트리올은 뉴욕에서 차를 타고 예닐곱시간 올라가니 뉴욕에 비하면 그 겨울이 얼마나 길고 지루할까.

아리조나 사막의 뜨거웠던 12월을 생각하면 그보다 아래인 멕시코의 여름은 또 얼마나 숨이 막힐까. 하지만 미국은 광활한 본토도 모자라 태평양의 하와이와 괌, 북극의 알래스카까지 영토를 게걸스레 확장했으니 정말 대단한 나라다.

미국 전체 50개주는 고만두고라도 내가 사는 뉴욕 주변만 해도 수려한 계곡과 청명한 호반, 스키장부터 온천장까지 볼거리, 놀거리는 수두룩하다.

이런 미국을 보노라면 공연히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우리는 조그만 한반도, 그것도 동강난 반쪽 땅에서 4500만 인구가 북적대는데 이곳은 도심만 벗어나면 한가로운 전원마을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광활한 간도를 중국에 뺏기고 민족의 영산 백두산마저 장백산으로 둔갑해 절반이 남의 땅이 되었고 급기야 독도마저 일본이 대놓고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판국이다.

하지만 어쩌랴. 전쟁을 해서 잃어버린 땅을 찾을 수도 없고 지극히 이성적인 대처로 음흉한 속셈을 물리칠 수 밖에. 그러나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사람이라는 재산 덕분이다.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우수한 두뇌와 뜨거운 교육열, 지기 싫어하는 투지와 끈기를 갖춘 한민족이 한반도에 6000여만명, 지구촌 곳곳에 800여만명이 흩어져 있다.

80년대 베스트셀러소설인 ‘단’에서 우학도인은 하나의 민족이 세계를 호령하려면 인구가 1억명은 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인구를 늘리지 않고도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미국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의 주인이 되자는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근자에 들어 백인 중심의 선이민자들이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불법체류자에 대한 가차없는 단속과 이민문호를 까다롭게 하는 ‘양동 작전’을 펼치고 있지만 합법적인 이민의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지금 재미한인은 적게는 150만명, 많게는 200만명으로 추산된다. 더도 말고 100만명만 더 한인 수를 늘린다면 상당한 정치경제적 파워를 발휘할 수 있다.

유태인은 미국 인구의 2%밖에 안되는 600만명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언론 예술계를 쥐락펴락 한다. 전문가 집단의 최상위그룹에 예외없이 포진, 친 유태계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도록 미국을 움직인다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유태계 수준의 파워를 발휘하기까지는 장구한 세월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향후 50년간 재미 한인 수를 미국인구의 1%인 300만명까지 늘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재미한인수를 합법적으로 늘리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다. 연전에 한국에서 간호사 인력을 대거 뉴욕으로 송출하는 계획이 추진되기도 했다시피 미국에는 간호사, 전기, 전력직, 컴퓨터 분야 등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한 상태다.

특히 베이비 부머세대(1946~1964년생)의 은퇴로 전문직의 수요는 날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인도처럼 서브웨이와 같은 체인점에 인도계 은행들과 연계, 재정지원과 함께 본국의 인력을 정책적으로 송출하는 사례도 검토할만 하다.

미국을 우리가 움직일 수 있다면 친미주의자는 새로운 시대의 애국인 상이 되지 않을까. 극렬한 반미(反美)의 구호보다는 슬기로운 용미(用美)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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