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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어부지리 올림픽도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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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어부지리 올림픽도 좋지만…
  • 뉴욕=노창현특파원
  • 승인 2008.07.1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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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월 스트리트 저널에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배가 아픈 기사가 실렸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이 ‘올림픽 특수’의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의 악명 높은 스모그로 인해 서구 선수단들이 베이징 대신 인접국인 한국과 일본을 베이스캠프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한국에만 약 30개국 선수단이, 일본은 24개국 선수단이 온다는데 올림픽 참가국을 200개국으로 예상한다면 무려 4분의 1이 중국 대신 인접국에 캠프를 차리는 셈이다.

대부분의 선수단은 개막 직전 선수촌에 입촌하고 일부 종목의 선수단은 개막식도 불참한 채 경기 직전에 간다고 하니 중국올림픽조직위원회의 입맛이 쓸 만하다. 이들 선수단이 중국을 외면함으로써 예상되는 소비손실과 홍보효과 등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베이징올림픽이 처한 상황을 보면 꼭 20년전 88서울올림픽이 떠오른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우리도 올림픽을 열기까지 손가락질도 많이 받았고 보이코트 위협도 받았다. 가장 비난을 받은 군사독재정권은 6.29선언에 따른 민간정부의 출범으로 부담을 덜었지만 서구의 동물보호단체들이 ‘개고기 문제’로 보이코트 캠페인을 벌였을 때는 참 당혹스러웠다. KAL 858기 폭탄테러 등 북한의 테러 가능성으로 올림픽 개최지를 바꿔야 한다는 국제 여론이 불 때는 많은 국민들이 애간장을 끓였다.

중국이 수단 다르푸르 사태와 티벳 사태 등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는 것은 업보이지만 올림픽을 통해 중국의 발전된 모습과 중화주의의 자부심을 고양하고픈 많은 중국인들의 심정은 과부 사정 홀아비가 알듯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서울올림픽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정말 얄미웠던 것은 일본이다. 한국이 올림픽을 반납하면 대신 치룰 수 있다고 억장을 무너뜨리게 하더니 간신히 그 문제가 잦아들자 ‘올림픽은 한국에서, 관광은 일본에서’라는 캠페인을 내걸고 호텔, 교통 등 여러 면에서 열악한 수준의 한국보다 일본에서 머물라며 노골적인 홍보를 벌였다.

실제로 서울올림픽 기간 중 적지 않은 선수단이 일본에 머물어 “힘들게 개최권을 따내 일본만 좋은 일 시켜준다”는 자조가 나오기도 했다. 그랬던 한국이 20년이 흘러 베이징올림픽의 수혜를 얻게 되니 음지가 양지되고 양지가 음지된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하지만 그 어부지리의 40%를 일본이 또 가져가는 것을 보면 여전히 찜찜하다. 적지 않은 선수단이 일본보다 비행시간이 1시간이나 짧고 물가도 상대적으로 싼 한국을 외면하고 구태여 일본으로 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는 숙박시설과 체육관과 스타디움 등 스포츠 인프라가 수준 이하이기때문이다. 또, 관광입국의 기치를 내건 지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한국의 관광호텔 수는 너무나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관광호텔업협회에 따르면 특1급과 특2급 호텔을 합치면 모두 117개이고 1급~3급, 심지어 등급미정 호텔까지 더해도 전국에 호텔이 558개에 불과하다. 부산에 있는 수상관광호텔과 강원, 경기, 전남북의 가족호텔, 인천과 제주의 전통호텔까지 이잡듯 뒤져도 21개이니 그것을 더해도 총 600개도 안되는 호텔로 무슨 특수를 누릴까.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수만 개 수준은 아니더라도 수천 개는 되어야 할텐데 전국의 ‘러브호텔’들을 용도변경(?)을 전제로 업그레이드시킬 수도 없고 참 답답한 노릇이다.

스포츠 시설은 더욱 딱하다. 올림픽 선수단이 활용할 수 있는 A급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일반 국민들이 여가를 즐길 만한 시설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으니 올림픽 특수는 정말 특수한 상황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올림픽이 지척이다. 뜨거운 여름, 국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줄 금메달의 낭보를 기다리는 마음은 고국의 독자들이나 이곳의 동포들도 매양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언필칭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인 우리가 언제까지 소수 정예의 엘리트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따내는 금메달에 환호작약을 할 것인가.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국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접근가능한 양질의 스포츠 시설을 확충함으로써 다수가 참여하는 가운데 재능있는 선수들이 배출되는 선진국형으로 나아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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