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9 00:25 (월)
[특파원칼럼] 총기소지권리에 환호하는 미국인?
상태바
[특파원칼럼] 총기소지권리에 환호하는 미국인?
  • 인터넷뉴스팀
  • 승인 2008.07.09 10: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욕=노창현 특파원

"총이 북핵을 이겼다." 지난 6월 27일 뉴욕타임스 A섹션 1면을 빗대어 본 말이다. 이날 타임스의 1면 톱기사는 연방대법원이 개인총기소지 권리를 5대 4의 표결로 승인했다는 소식이었다. 덕분에 북한핵원자로 냉각탑 폭파 소식은 톱 자리를 내주고 사이드로 밀려났다.

총기소지 규제를 반대한 쪽이나 찬성한 쪽이나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역사적이라는 데 이의를 다는 미국인들은 없다. 총기소지가 헌법에 보장된 개개인의 권리라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70년만에 처음으로 수정헌법 2조에 관한 구체적인 해석을 내린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타임스는 대법원 판사 9명의 사진과 이름을 1면에 넣는 등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이전에 사설을 통해 총기소지 권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던 터라 이날 판결은 타임스에도 충격을 미쳤을 법 하다.

전국총기협회(NRA)는 이날 판결을 놓고 '미국 역사의 위대한 순간'이라고 환호하면서 “이를 계기로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 등 권총 소지를 규제하는 최소 5개 도시에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웨인 라피어 NRA 부회장은 “수정헌법 2조가 총기소지의 근본적 권리를 보장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됐다. 법을 준수하는 모든 미국인들은 어디에서든 총기소지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환호했다.

반면, 수정헌법 2조의 무기소지권을 경찰 등 치안당국의 공적 소지권으로 해석하고 76년 이래 개인의 권총 소지를 엄격히 금지한 워싱턴 D.C. 등 여러 곳의 규제론자들은 우려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워싱턴 D.C.의 애드리안 펜티 시장은 “대법원 판결이 D.C.에 더 많은 권총을 들어오게 하고 더 많은 권총사건을 발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의 총기 공방은 우리나라처럼 민간인의 무기소지 금지가 당연시되는 나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적 배경을 놓고 보면 일면 수긍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대륙 발견 이후 이곳에 정착한 유럽의 이주민들에게 총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들로부터 목숨을 지켜주는 소중한 수단으로 생각되었다.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서부개척시대를 거치며 총에 대한 개인의 권리가 범죄의 수단 등 공공의 안녕을 해할 수 있는 부정적인 요소보다 훨씬 크게 부각되었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완비된 현대에 와서까지 총기소지가 개인의 안전을 담보하는 권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라는 데 많은 미국인들은 동의한다. 지난해 버지니아텍 총기참사 이후 허술한 판매 규정을 질타하고 개인의 총기소지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물론 다른 한쪽에서는 되레 총기소지가 좀더 자유로웠다면 버지니아텍 사건이 일어났을 때 현장 대처가 가능해 희생자를 크게 줄였을 것이라고 반박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사실 "누군가 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개연성은 일정 부분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고 범죄 발생시 적극적인 대응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미국인들이 가능한 언쟁을 삼가는 것은 자칫 순간의 일탈로 상대가 총을 휘두를 수도 있는 두려움 때문인 경우가 사실 꽤 많다고 한다. 악수라는 서양 풍습은 내 손에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는 행위에서 유래된 것이고 눈이 마주치면 활짝 미소 지으며 인사하는 다정다감함도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라는 것을 말하는 제스추어에서 시작됐다는 해석이 있는 것을 보면 미국에서 총기소지는 사회적 관습까지 좌우할 만큼 중요하고도 민감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모르는 남과 언쟁도 자주 하고 멱살잡이도 쉽게 하는 우리네 풍토의 잦은 시비는 피차 총같은 위험천만한 무기가 없다는 안도감이 자리하기 때문에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총기소지 합법화는 엄격한 규정으로 제한하더라도, 범죄집단이나 심신미약자에게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안전사고의 증가, 범죄에의 더 쉬운 유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손가락 하나로 방아쇠만 당기면 사람의 목숨을 뺏을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들을 너도나도 갖고 있다면 크고 작은 총기사고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버지니아텍 참사처럼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이들이 희생되는 일이 없을지는 몰라도 잦은 총기사고로 희생되는 전체 숫자는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연방대법원은 판결만 할 게 아니라 서부시대 총잡이처럼 허리춤에 총을 차고 다니도록 권고하는 게 좋았을지 모른다. 눈가리고 아웅하지말고 모든 미국인이 차라리 총기를 내놓고 다니는 것이 피차 안전할 터이니까.

솔직히 말해서 총기공방의 은밀한 배후에서 ‘죽음의 상인’들이 벌이는 어마어마한 로비를 떠올리면 총기소지 권리 운운은 그저 빛좋은 개살구라는 생각이 든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