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괴산 출신의 김종호 전 국회부의장 타계를 애도하며

이 량 기자l승인2018.03.08 21:41l수정2018.03.08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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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신상구 충청문화연구소장.

충북 괴산군 청천 출신으로 '작은 거인' 또는 ‘김소평(등소평)’이란 별칭에 걸맞게 한시대 우리 행정·정치사의 중심에 섰던 김종호(金宗鎬) 전 국회부의장이 지난 2018년 3월 3일 서울대 병원에서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1935년 11월 30일 충북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에서 초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청주 석교초등학교, 청주중, 청주고, 서울대 법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1960년 주사로 임용 발령을 받고 내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후 그는 내무부 지도계장, 재정과장, 새마을 부국장, 지방행정 차관보, 청와대 정무비서관, 관선 충북도지사(1979), 내무부차관(1980)을 거쳐 내무부 장관, 제15대 정무 제1장관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이처럼 그는 정통관료 출신으로 열정과 책임감이 강하고 소탈하면서도 성격이 치밀해 오래 관운이 따랐다. 특히 충북 도지사와 내무부장관 재임 시에 위민행정(爲民行政)을 해 국민들의 신망이 높았다. 그리고 내무부 장관 재임시에 완벽한 사회질서와 행사지원을 통해 86아시안게임을 한 건의 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치루어 냈고 88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지난 1987년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내무부 장관직을 내려놓으며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다.  
그러다가 그는 11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 후 제12·13대 총선에서 진천·음성·괴산에 출마해 내리 당선됐고 제14대 총선 당시에는 민주자유당 후보로 4선 중진의원 반열에 올라 원내총무와 정책위원장을 역임했다. 제15·16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과 자유민주연합(비례대표) 소속으로 각각 출마해 당선, 충북 출신으론 처음 6선 고지에 올라 자민련 상임고문과 총재 권한 대행 그리고 부총재, 국회 운영·내무·예결(제11대, 12대)·정보위원장, 제16대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는 영광을 누렸다.
김종호 전 국회 부의장은 민주자유당 대선 경선 당시 김영삼 후보 추대위원회의 총괄 간사를 맡아 야전 침대를 사무실에 가져다 놓고 밤을 새우며 선거 전략을 진두지휘한 일화가 유명하다. 그리고 1991년 8월에 세계 스카우트 의원연맹을 창설하고 초대와 2대 총재로 선출되어 제17회 세계 잼버리 대회를 강원도 고성에 유치하여 개최함으로써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해 탈당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고, 이후 17·18대 총선에 출마해 재차 정계복귀를 모색했으나 결국 낙선, 파란만장한 의정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후 대한민국헌정회 부회장과 원로위원을 지내다가 정계를 떠났다.
고 김종호 전 국회부의장은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청주고 교가를 작사한 포암(逋巖) 이백하(李栢夏,1899-1985) 선생의 청주고 수제자로 충북 도지사 재직 시에 충주를 방문하면 꼭 교현동에 거주하고 있던 이백하 선생을 찾아뵙고 사제의 정을 나누곤 했다고 한다.
특히 고인은 업무능력이 탁월해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새마을 운동을 주도했다. 1969년과 1970년 서기관으로 청와대에 파견 근무를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고 국립영화제작팀을 지휘해 강원도와 충청남·북도, 경상남·북도의 농어촌 마을의 실태를 조사해 보고한 것을 시작으로 새마을 운동의 산파역을 했다. 새마을 운동이 농어촌 근대화 운동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성숙되는 과정에서 새마을 운동 창설의 기획 실무자로 새마을기와 새마을 모자 등 엠블렘을 제정하고 관련 법규의 정비에 이르기까지 제반 업무를 추진하였다. 새마을 운동이 태동되고 실험 사업이 시행되면서부터 청와대에서 새마을 운동을 담당한데 이어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정부가 전국의 모든 마을에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잘 살아보려는 새마을 정신이 왕성한 부락과 부지런히 일하여 좋은 실적을 올린 부락을 선정 하여 우선 지원토록 하는 「우수마을 우선 지원 원칙」을 제정, 새마을 운동의 효율성을 높이는등 새마을 운동의 기초점화와 확대에 기여 하였다. 그리고 충북 도지사 재임 시에 청주대를 종합대학교로 승격시키고, 충북대 의대를 개설하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등으로 충북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받고 있다. 또한 6선의 국회의원과 국회 부의장을 역임해 한국의 민주정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런가 하면 성균관이사장을 역임해 유교 발전에도 기여했다. 
수상경력으로는 벨기에대십자 훈장(1982), 새마을금고 특별포상 금장(1992), 브론즈울프 훈장(1999) 등을 들 수가 있다. 그리고 저서로는『새마을 운동과 지도이념』이 있는데, 이 책은 새마을 운동의 교과서로 사용 되었다.
고인은 정계 은퇴 후에도 일주일에 북한산을 3회 이상 오를 정도로 건강을 과시했으나 2년 전부터 건강이 악화돼 투병생활을 하다가 결국 지난 3월 3일 83세를 일기로 서울대 병원에서 타계해 친지들의 마음을 안타깝고 슬프게 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연욱, 차남 연식, 3남 연진 씨와 장녀 정현, 차녀 정수씨 등 3남 2녀가 있다.
이제 이승에서의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으시고 천국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


이 량 기자  6691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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