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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事物)을 판단(判斷)하는 두 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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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事物)을 판단(判斷)하는 두 개의 눈
  • 중앙매일
  • 승인 2017.10.1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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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서병규 본사주필.

사람이나 모든 동물들은 두 개의 눈이 있어 한 결 같이 사물을 입체적으로 볼 수가 있다. 어느 공장의 높은 굴뚝에 올라 청소를 하고 내려온 두 학생이 있었다. 한 학생은 얼굴에 잔뜩 검정이 묻었고 다른 한 학생은 말끔했다.
그런데 이내 한 학생이 검정이 묻은 얼굴을 씻으러 물가로 갔다. 그러면 얼굴을 씻으러 간 학생이 검정이 묻은 학생일까, 아니면 묻지 않은 학생이었을까?
세면장(洗面場)으로 간 학생은 얼굴이 말끔한 학생이었다. 얼굴에 검정이 묻은 학생은 상대방 학생의 얼굴이 말끔하기 때문에 자신도 그러리라 생각했고, 얼굴에 검정이 묻지 않은 학생은 지금 자기가 보고 있는 상대방 학생처럼 자기 얼굴에도 검정이 묻었으리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평소 판단의 대부분을 남을 통해 하게 된다.
   
남이 피아노학원에 가니까 나도 가야하고, 그가 과외공부를 하니까 나도 해야 하며, 그가 일류대학을 지원하니까 나도 질 수가 없는 비교를 통한 나의 상황 판단, 목표설정이 흔히 이 같은 인식(認識)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나를 통해서만 남을 보는 시각(時角)도 있다. 이씨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개국(開國) 직후 당대의 고승(高僧) 무학 대사(無學 大師)에게 “나는 그대를 영락없는 돼지로 보는데 그대는 나를 어찌 사람으로 보는가?” 하고 안하무인격(眼下無人格)으로 물었다.   
이에 무학 대사는 “본래 사람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만 돼지는 사람도 돼지로 보는 법이다.” 라고 이성계가 돼지이기 때문에 사람인 무학 자신도 돼지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이다. 이 경우는 사물을 나를 중심으로 보는 사례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바는 사물이나 나를 보는 눈을 두 개 갖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점이다. 주관(主觀) 객관(客觀) 어느 하나만  갖고는 사물을, 자기를 바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날 남을 통해서, 남과 비교해서 나를 판단, 인식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느 분야에서나 균형 잡힌 인재는 돋보인다.

맹목에 빠져 주관 없이 남의 여론, 비판, 눈치에 구애를 느껴 주체성을 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반대로 막무가내로 남의 말에는 귀 기울일 생각을 않은 채 고집만 부리는 행태도 문제가 있기는 또한 매한가지이다. 객관은 없이 주관만 내세워 융통성이 없이 고집불통이 되는 사례도 부족하기는 역시 같다.  
이렇듯 사물을, 나를 바로 판단 인식한다는 게 어려운 일인가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무엇보다 “너 자신을 알라!”고 했나보다.
우리의 청소년 학생들에게도 이런 균형 잡힌 두 개의 눈을 갖도록 하는 게 교육의 바른 방향이 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균형 감각이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완벽을 추구하기가 어려운 문제이기에 늘 겸허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두 개의 눈을 잘 관리해 나가야 하리라는 생각을 거듭 갖게 된다. 쌍안경(雙眼鏡)과 망원경(望遠鏡)의 차이점은 다음에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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