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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평등사회인가, 불평등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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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평등사회인가, 불평등사회인가?
  • 중앙매일
  • 승인 2017.03.1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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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서병규 본사주필.

물질문명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그 나라사람들의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이어서 채우고 또 채워 봐도 계속 불만이 남는 까닭에 급기야 절망의 늪에 빠져 허덕이기 마련이라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최근 우리 생활주변만 보아도 실감이 나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반 분야는 끝없는 경쟁을 통해 보다 많은 것을 얻고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들이다.
옛날 어느 때 한 임금이 신하와 함께 행차를 하였다가 나룻 터에서 어느 뱃사공의 배를 타게 되었다. 임금이 사공(沙工)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그대의 나이가 몇이시오?” 이에 사공이 “쉰둘이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요? 내 나이와 같구려, 생일은 언제요?”하고 임금이 재차 물었다. “동짓날 열하루입니다.” 라는 사공의 대답에 왕이 놀란 듯 “내 생일 시(時)와 똑

외관상 평등이 불평등 깨지 못함 바로 일이야                

같구려. 나와 똑 같은 운명을 타고 났는데 그대는 어찌 이 시골에 묻혀 사공의 신세가 되었단 말이오?”하고 탄식(歎息)했다.
그러자 사공은 정색을 하며 “그것은 잘 모르는 말씀이옵니다. 임금님께서는 왕궁(王宮)에서 만사를 주도하시지만 여기서는 제가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생사를 가름 합니다. 임금님께서도 이 배를 타신 까닭에 제 말을 어기실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각자는 각자의 권능과 역할과 위치를 갖고 있다는 소박한 설명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오늘날 같은 평등과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야 더 일러 무엇 하겠는가?
평등이 이루어지고 경쟁을 통해서 얻으면 만족, 자족(自足)할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실은 그것들이 보다 큰 불만과 고통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현대인들은 절감하고 있다. 경쟁도 평등도 각자가 지닌 고유의 능력과 인격을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자는 없다. 진정 경쟁에서 이기는 길은 그것을 벗어나는데 있다. 서양의 경영원리(經營原理)가 지배하는 산업사회, 정보화 사회가 그래서 평등 자유가 있으면서도 우리들에게 불안과 초조 갈등 등이 증폭하는 상황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이념상의 평등이 현실적 평등을 보장하여 주지 못한 채 불평등적 요인이 증폭하는 모순 앞에서 번민하는 현대인 모습은 같은 상황, 운명을 타고 났으면서도 서로 불평등을 절감하는 이야기속의 임금님과 뱃사공의 처지와 같은 것이리라. 대통령의 아들은 권좌를 떠났어도 역시 위력을 잃지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외관만 보고 사물이 다른 하나와 같다는 것은 허구여서 사실상 같은 것일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아야 하겠다. 그래서 같은 모습을 갖추어도 서로 다를 수 있어 평등 속의 불평등을 극복할 스스로의 역량을 길러 나가야 하겠다. 세상을 임금님의 시각에서만이 아니라 뱃사공(沙工)의 시각에서도 볼 지혜가 있어야 하겠다.

행복의 지혜는 스스로 배워 느껴 아는데 있다                     

한 결 같이 그러지 않고서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다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못하다’거나 ‘나는 저런 사람들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이다’라는 생각 따위는 사라질 것이다.
짐승은 먹고 자고 생육(生育)하고 번식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해 한다. 그러나 사람은 않 그렇다. 먹고 마시고 소유하고 누리는 것만으로는 일시적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으나 오래 유지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먼저 예수님을 만나 그 분과 교제를 해야 행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고 예수교 신자들은 말하는 것처럼 다양한 방안들이 다수의 형태로 제시된다. 그 같은 지혜는 스스로 터득(攄得)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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