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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것을 소중히 가꾸고, 알뜰히 지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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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것을 소중히 가꾸고, 알뜰히 지키는 길
  • 중앙매일
  • 승인 2017.02.1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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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서병규 본사주필.

10여 년 전 일본 영화, 만화 등 문화개방에 즈음하여 그 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때가 있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주변국과의 여러 가지 형태의 분쟁 내지는 관계가 피차 불신을 키우는 가운데 상대방을 거부하는 중에 내 것을 지키려는 행태가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날 한 때 그런 걱정을 가졌던 대로 우리의 전통문화가 일본 혹은 중국의 대중문화에 의해 큰 훼손을 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인 것이다. 이 같은 우려를 인정하는 시각은 ‘문화란 우월한 문화에 의해 열등한 것이 침식을 당하기 마련’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지배하기 마련이라는 논리에 근거하는 것이다.
반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측의 주장을 보면, “우리는 역시의식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인간에 대한 이성적 각성을 통하여 우리의 선조들은 이 나라, 이 겨레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왔다”고 주장한다.

남을 수용, 내 것과의 융화로 발전 도모 가능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들도 능히 우리 것을 지켜 나갈 수 있다고 확신을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충효인(忠孝仁.)의 사상이나 신의 존중, 인내천(人乃天). 생명존중(生命尊重)사상 등이 우리의 사상적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정신적 전통은 꾸준히 축적되어 마침내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는 핵심적 사상으로 집약되었고, 또 실천운동으로 승화된 것이 3,1운동이었던 것이라는 점을 들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외래문화의 침식을 걱정하며 민족의 정신적 유산을 소중히 여기고, 긍지(矜持)를 갖고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미래를 걱정하여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시각이다. 정신이든 물질이든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고 버리기를 잘 하는 사람이나 민족은 번영을 누리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과거 역사를 회고해 보면, 늘 남의 것과 새 것에 현혹되어 내 것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민족과 개인은 후진적 상황을 면치 못하였다. 남의 것을 받아들여 내 것에 융화시켜 나의 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지혜를 가진 민족은 아름답고 풍부하면서 긍지 높은 문화를 향유해 왔던 것이다.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아도 대륙문화를 쫓다가 우리의 전통적 고유사상을 잃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고, 고려 때 불교만을 쫓다가 유교를 버렸는가 하면, 조선조에서는 반대로 유교만을 숭상하다가 불교를 버린 바 있다. 오늘날에는 보기에 따라 기독교에 심취하다가 민족의 전통문화를 등한히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고 있는 실정이다. 또 한글이 우리글이고 한문(漢文)은 남의 것이라 주장하는 명분에 한문을 버리는 상황을 맞기도 하고, 세계화라는 물결로 인하여 영어 때문에 우리말을 소홀히 하는 면모까지도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남의 논을 지난 물로 내 벼 길러 수확할 수 있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오늘이 열려 있는 것이다. 유행하는 것, 쓰임새가 있다는 아유만으로 익혀온 우리들의 것을 다 버린다면 과연 우리들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인 것에 우리의 모든 의식을 집중시켜 무작정 남의 것을 배척하자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것, 지켜온 것을 잘 가꾸어 가진 자의 기쁨을 누리고 그 바탕위에 새로운 창의성을 가미하여 한층 풍요로운 문화의 꽃을 피우자는 것이다.
남의 것이라도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배격하는 지혜의 발휘가 긴요한 때라 할 것이다. 남의 논을 통과한 물을 이용하여 내 논의 벼를 길러 풍요로운 수확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외국의 문화도 우리가 자신감을 갖는 가운데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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