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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규 컬럼-젊음이 이름다운 이유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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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규 컬럼-젊음이 이름다운 이유를 생각해 본다
  • 중앙매일
  • 승인 2016.07.1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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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 주필

황혼기에 접어든 노년의 필자가 요즈음 대학 강단에서 보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웬일인지 그늘지고 비틀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분히 냉소적인 자세로 임하고 모든 것이 그저 그렇고 그렇다는 식으로 참신이나 진실(眞實)추구의식이 희박해 보인다.

무엇을 이루려고 참을성을 앞세우고, 끈질기게 노력하는 성실한 의욕이 부족해 보이고 어떤 상황에서나 쉽게 자기 존재를 평가절하 해 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기도하다. 아마도 취업(就業)마저 여의치 않은 현실이 주는 위기감, 절망감 아니면 불안감이 뒤섞여 일그러진 표정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젊은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살아야,,,

눈망울이 영롱해 보여야 할 텐데 슬픈 것처럼 흐려있고, 기상이 씩씩해야 할 것임에도 풀죽은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젊음이 이름답게 보이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젊음의 의미가 달라진 것인지 영 아름다워 보이질 않는 모습이 역연하다. 꽃도 피기 전에 시든 게 아닌지 걱정스러운 게 나만의 생각은 아닌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절음이란 진정 싱싱하고 새롭고, 힘차야할 텐데 이기적이고 타산적이고 순간적 쾌락을 탐닉하는 굴절된 모습으로 변질된 게 아니가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절음이란 진정 미래지향적인 사고(思考)가 바탕이 되는 성취의 가능성이 무한하다는데 있을 텐데 도무지 희망을 지닌 젊은이들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흔히 우리들의 삶이란 ‘있는 그대로의 상태’가 아니라 ‘무엇인가로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젊음이 좋다는 것은 되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삶속에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가장 많이 있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인 것이다. 어린이에게도 굉장한 가능성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는 사실이 의식의 표면에 부각되지 않아 그 가능성의 의미가 채 여물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리고 노년의 허전함은 이제 더 이상 어떤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는 데서 오는 심리적 반응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노인은 과거의 추억 속에 살고, 중년은 현실에 집착하여 살며, 청년 즉 젊은이는 미래지향적 사고가 지배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산다하였다.

이 세상에 귀한 것들은 많지만 젊음보다 귀한 게 있겠는가. 젊음은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서 전개되는 생명의 약동을 더 값지고 알차게 하는 지식과 승기(勝氣)를 갈고 닦는 시기이기 때문에 한없이 귀한 것이다.

 

젊은이는 늘 웃음을 지닐 수 있어야

건전한 지식을 터득하고 영롱한 슬기를 더해가는 착실한 성장의 모습이야 말로 젊은이 존귀하다는 증표가 될 것이다. 젊음의 진정한 의미는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숭고한 꿈을 키우고 함께 삶을 엮어나갈 인생의 동반자들과 사귐을 넓고 깊게 이루며 가장 값진 삷의 목적을 추구(追求)하는데 있다 할 것이다.

미록 우리의 현실이 어둡고 답답하다 할지라도 아름다운 미래의 꿈이 있기에 젊음은 언제나 환한 웃음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거기서 느끼는 인간의 고독이 뼈에 사무친다하여도 웃으며 극복해 나갈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크고 아름다운 꿈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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