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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맞이 대동 장승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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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맞이 대동 장승제 이야기
  • 중앙매일
  • 승인 2016.04.1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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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국학박사, 향토사학자, 시인, 칼럼니스트) 辛相龜
▲ 2015년 대동 장승제를 올리는 모습

지난 1983년에 국립 광주박물관 이종철 학예연구실장(李鍾哲, 40)이 마을의 재앙과 도둑을 막아주는 액막이 장승에 대한 전국적인 규모의 체계적인 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해 학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그는 전국 1백87개 소의 장승에 대해 지역분포, 명칭, 형태, 신앙적 요소를 비교조사한 연구를 했다.


신석기 때부터 유래된 장승은 돌하르방, 우성목, 벅수, 대장군, 솟대, 당산, 돌탑, 수사리 등으로 불리운다. 장승은 신라?고려 때에는 장생(長生)으로, 고려후기부터 조선중기까지는 생(?)으로 불려졌다. 조선중기 이후는 장승(長丞)으로 변했다가 조선후기에 들어서는 후(?)의 명칭이 나타나기도 했다.


장승은 전라도에서는 액막이와 마을수호의 기능을, 경상도 지역에서는 마을수호와 부락안녕 외에 사성(寺城) 수호의 기능도 한다. 충북과 강원, 경기 지방에서는 잡귀방지의 기능이 특이하며 제주도에서는 귀신을 쫓는 기능이 단연 으뜸이다.


장승의 기원은 부족간의 경계의 표시로 산이나 들 가운데 돌이나 나무를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신석기시대 초에는 농경이 시작되면서 뚜렷한 구역정착 표지로 바뀌고 청동기 시대에 와서는 솟대, 서낭당(石積), 누석(累石)으로, 철기시대에는 풍농, 다산을 바라는 동제신(洞祭神)으로 발전되었다.


장승은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그에 얽힌 속신(俗信)과 제의(祭儀)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경기도에서는 장승 앞에서 세탁 욕설 음행 살인 등을 삼가고 있으며 바느질을 하면 곰보가 생기고 개의 피를 대문에 바르면 역신이 못 들어온다고 믿고 있다. 충청도에서는 장승 앞에 밥상을 차려 바치고 냉수와 떡을 올려 배례를 한 뒤 짚으로 만든 사람을 대신으로 바친다. 또 그믐 전날밤 동네사람들이 주인 모르게 나무를 훔쳐 베어다가 아침에 톱 자귀 끌 등으로 남녀 한쌍의 장승을 조각한다.


장승에 대해 제사를 올리는 의식은 동네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이 목욕재계한 후에 올리는 것이 보통. 그 시기로는 정월초하루에서 보름사이가 68%로 가장 많으며 10월 1일에서 15일 사이는 15%로 분석 집계됐다.


우리나라의 장승문화가 이렇듯 유사 속의 상이를 갖는 이유는 민간신앙이 토속적이고 지역발생적이며 비조직적인 전승이어서 특정한 마을이나 주민의 생활관습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인간본연의 종교적 욕구를 그대로 허식없이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의 경우 장승제는 대동, 용운동, 소제동, 법동, 비료동 등 5군데에서 정월 대보름 맞이 행사의 일환으로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대동 장승제는 지난 1988년부터 대동 대동교(1938년 준공) 옆 장승터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 전날 오후 6시 경에 대동장승제봉양위원회 주관으로 개최되고 있다.
대동 장승터는 대전시 동구 원동 4거리에서 대동 오거리(지하철 대동역) 방향으로 가다가 대동교를 지나 우측에 있는 새들뫼휴먼시아아파트단지 104동 앞 대동천변 시멘트 포장도로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대동 장승터에는 부정형 자연석 석장승 2기(天下大將軍, 地下女將軍), 돌로 돤 직사각형 제상(祭床), 정자, 대동 장승제 안내문 시설물 등이 위치해 있다. 석장승 2개의 위치는 천안대장군이 죄측, 지하여장군이 우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올해 2월 21일 현재 대동장승제봉양위원회는 33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위원장은 최주용(69)과 안상신(61)이 공동으로 맡고 있다.


올해 대동 장승제는 정월 대보름날 하루 전인 2월 21일 오후 6시에 대동 주민과 동사무소 직원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주요 참여 인사로는 이장우 대전 동구 국회의원, 한현택 대전 동구청장, 유택호 대전 동구의회 의장, 대동자생단체장 12명 등을 들 수 있다.


 식전행사로 대동 주민들로 구성된 농악대가 장승터 앞 도로를 꽉 메우며 한바탕 신나는 농악 한마당 공연을 했다. 날씨가 추워 주민들이 많이 참여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 그러나 대동 장승제가 춘절을 맞이하여 우리의 전통문화를 잇고, 주민들의 대동화합을 도모하며, 대동의 무궁한 번영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동 장승제 제의는 해마다 홀기에 따라 유교식으로 올리고 있다. 올해 대동 장승제의 초헌관은 최주영 대신마을금고 이사장, 아헌관은 안상진 주민자치위원장, 종헌관은 김명호 대동동장이 맡았다. 제물로는 사과, 배, 밤, 대추, 곶감, 북어, 시루떡, 돼지머리, 오이, 바나나, 전, 탕국, 대파 등이 있다.


대동 장승제가 몇 백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지난 1935년 1월 20일 송석하님이 촬영한 사진 기록과 민속사진 특별전도록에 수록되어 있는 첫 기록으로 보아 올해가 81주년이 되는 해로 볼 수 있다.


올해 대동 장승제는 동구청에서 예산 70만 원(2000년 30만 원, 2010년 50만 원)을 지원받아 농악한마당, 장승제의, 소지 올리기 등 다채롭게 봉행되었다. 특히 소지 올리기는 대동 장승제에 참여한 사람들이 각자 무병장수, 무사태평, 사업 번영, 승진 등 소원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은 행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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