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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호국영웅 이장복 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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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호국영웅 이장복 중사
  • 중앙매일
  • 승인 2016.03.2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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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서부보훈지청 우리고장 호국영웅 알리기 아홉번째

이장복 중사는 1930년 4월 29일에 충남도 아산시 둔포면에서 태어났다.

1949년 5월 북한군은 전면남침에 앞서 군사력을 과시하고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지형적으로 취약한 옹진반도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해 왔고, 결국 아군은 병력의 열세로 인해 옹진반도의 요충지인 까치봉을 빼앗기고 말았다.

국군 제12연대 1대대는 5월 25일에 허암(許岩) 소령의 지휘 아래 까치봉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지만 탈환은 쉽지 않았다. 수 차례에 걸친 탈환 시도가 거듭 실패하자 경기도 수색에 있던 이장복 중사가 소속된 제13연대 2대대가 출동하여 치열한 사투 끝에 6월 22일 까치봉을 탈환했다.

그러나 까치봉 후방의 유리한 지형에 구축된 적 박격포 진지에서 발사되는 포탄에 의해 아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었고, 또한 고지를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1949년 6월 23일 국군 제1사단 13연대 2대대는 이를 파괴하기 위해 특공소대원 중에서 적진에 침투할 결사대원을 선발했고, 이에 지원한 이장복 하사는 6명으로 구성된 결사대의 일원이 되어 까치봉 후방의 적 박격포진지를 격파하고 278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소총 대신 10발의 수류탄으로 무장했다.

적은 6문의 120mm 박격포를 여기저기에 설치해 놓고 있었는데, 이장복 하사는 동료 대원들과 함께 적의 박격포 진지까지 접근하는 데 성공한 후 수류탄을 투척하여 이를 파괴했다.

이어 278고지를 향해 진격을 개시하여 7부 능선까지 무사히 도달한 결사대원들은 기관총 진지와 유개호 속에도 수류탄을 던져 넣어 이를 파괴하고 8부 능선 일대에 구축되어 있던 적의 유개호도 파괴했다.

이때 전방 5~6미터 지점에 잠복해 있던 북한군 여러 명이 불쑥 나타나 따발총을 난사하여 애석하게도 이장복 하사는 적탄에 맞아 전사했다. 결사대의 불의의 기습에 당황한 적은 진지를 포기하고 퇴각하기 시작했고, 이때를 놓치지 않고 대기하고 있던 아군이 총공격을 가해 적 200명 살상 · 기관총과 따발총 35정 노획이라는 큰 전과를 올렸다.

정부는 까치봉 탈환과 박격포 진지 파괴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이장복 하사를 중사로 1계급 특진시키고 그에게 을지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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