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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호국영웅 한상국 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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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호국영웅 한상국 상사
  • 중앙매일
  • 승인 2016.03.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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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서부보훈지청
▲ 한상국 상사.

한상국 상사는 1975년 1월 31일에 충남도 보령시 웅천읍 무창포에서 태어났고, 관당초등학교와 웅천중학교를 거쳐 광천상업고등학교(현 광천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95년에 해군에 입대해 부사관 155기로 임관한 후 포항함 · 충주함 · 부산함 등에서 조타사로 근무했으며, 2001년 12월 1일에 한국 해군 2함대 소속 참수리고속정 357호(정장 윤영하 소령)의 조타장으로 부임했다.

  제1연평해전이 발생한 지 3년 후인 2002년 6월 29일, 2002 한·일 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른 시점에서 북한은 다시 한 번 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해 무력 충돌을 일으켰다. 이날 오전 9시 54분부터 북방한계선을 넘기 시작한 북한 경비정들이 10시 25분에 근접차단을 실시하던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정에 대해 선제기습포격을 가해 참수리 357정의 조타실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이에 우리 해군도 대응사격을 개시하며 항전했다. 교전은 오전 10시 56분까지 31분간 진행되다 북한의 SO·1급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 북으로 퇴각함으로써 종결됐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북한 경비정으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은 참수리 357호정이 침몰하고 윤영하 소령 · 한상국 상사 · 조천형 중사 · 황도현 중사 · 서후원 중사 · 박동혁 병장 등 우리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한편 북한은 SO·1급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되고 3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2008년 4월에 그간 ‘서해교전’으로 불리어 오던 이 전투의 명칭을 ‘제2연평해전’으로 바꾸고 추모행사도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정부기념행사로 승격시켰다.

  이 전투에서 한상국 상사는 오른 손의 감각이 무뎌지는 병에 걸리고 조타실이 화염에 휩싸여 서 있기 힘든 상황에서도 “나는 배를 살릴테니 너희들은 사람을 살려라!” 라는 말을 남기며 끝까지 운항키에 왼팔을 묶고 운전해 배가 바로 서 있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동료들의 항전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당시 한상국 상사의 시신을 찾지 못해 시신 없는 영결식을 치뤘는데, 42일 만에 참수리 357호정이 인양됐을 때 운항키를 부등켜안은 모습으로 발견됐다.

  그의 전사 후 하사에서 상사로 두 계급 승진이 되고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됐으며, 2009년 12월 1일에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570톤 유도탄고속함(PKG)인 ‘한상국함’이 진수됐다.

  2012년 6월 29일에 한상국 상사 유족과 해군 2함대 의전 장교단이 참석한 가운데 그의 모교에서 한상국 상사 10주기 추모식이 거행됐고, 한상국 상사를 포함한 연평해전 6용사는 처음에는 순직처리 되었다가 최근 전사자로 처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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