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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병의 눈물과 흐린 기억 속의 351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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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병의 눈물과 흐린 기억 속의 351고지!
  • 중앙매일
  • 승인 2019.07.24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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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서부보훈지청장 이동희

6.25참전유공자! 생각만 해도 고맙고 우리가 최선을 다해 존경하고 예우해야 할 분들이다.
지난 7월 중복을 맞아 건강한 여름을 나시라고 삼계탕을 마련하여 충남 태안에 사시는 재가복지 대상인 6.25참전유공자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나를 반갑게 맞이하신 6.25참전유공자 분께서는 직접 찾아준데 대하여 고맙다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66년 전 그 치열했던 351고지 전투 이야기를 천천히 꺼내셨다.
대부분 6.25전쟁 하면 백마고지·낙동강·장진호 전투 등이 회자되지만 351고지 전투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것이다.
351고지는 동해안 최북단 군사분계선 인근인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고지로 북측의 저지대를 감시할 수 있고 월비산 점령의 발판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6.25전쟁 당시 1951년 7월 15일부터 1953년 7월 18일까지 수 십 차례에 걸쳐 이곳을 장악하려는 국군 제 5, 11, 15, 수도사단과 북한군 6, 7, 19사단은 월비산 351고지를 뺏고 뺏기기를 반복하다가 1953.7.27일 휴전협정으로 인하여 전투가 종료된 곳이다.
특히, 휴전 협정을 앞두고 북한군이 6월 본 공세에 앞서 전력을 집중한 곳이 바로 351고지다. 1953년 6월 2일부터 7월 18일까지 총 세차례에 걸쳐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결국 방어에 성공하지 못하고 고지를 빼앗긴 전투로 쓰라린 패배와 교훈을 알려준 전투였다.
원래 356고지였으나 전쟁 중 산 정상이 5m나 깍여나갔다고 하니 이곳에서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그 어르신은 이야기를 마치며 그 당시 전우들은 대부분 전사했고 자신만 간신히 살아오셨다며 눈시울을 적시었다. 또한 수 십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노병의 흐린 기억 속에는 그 치열했던 351 고지전에 잠시 멈추어 있는 듯 보였다.
그러면서 그 치열했던 351고지 전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몹시 안타깝다고도 했다.
66년 전 우리 국군은 정전협정을 앞두고 마지막까지 한 치의 땅도 양보할 수 없는 전투를 벌였고 그로 인해 당시 수많은 국군과 유엔군이  전사하였다.
7.27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을 맞아 당시 351고지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서 산화하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6.25전쟁 당시 함께 대한민국을 지킨 22개국 195만 유엔군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에도 감사를 드린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분들의 희생과 공헌으로 지켜졌음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들이 보여준 그 정신과 그 날의 쓰라림을 잊지 않고 지켜 나가는 것이 후손된 우리의 도리가 아닐까 한다.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국제 질서 속에서 한반도 평화의 중대한 시점에 와있다. 그러나 우리가 6.25참전유공자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예우하는 것이 우리가 염원하는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정착에 한걸음 더 다가간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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