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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내 아이도 가야 할 길, 청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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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내 아이도 가야 할 길, 청렴의 길
  • 정광영 기자
  • 승인 2019.03.1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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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지방보훈청 보상과 주무관 김병남

겨우 앞만 볼 수 있는 주방의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지만 세상은 어둡기만 하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그리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것도 아니고 자동차도 간간히 지나갈 뿐이다. 싸늘한 바람은 하늘을 겹겹이 덮고 있는 시꺼먼 구름에게 당장이라도 한 소쿠리의 물을 쏟아 부우라 가로수 잎을 통해 재촉하고 있다. 지난밤부터 비바람과 폭우가 이미 예보 되어 있지만, 그 일기예보가 오보이기를 바라며 몸을 앞으로 내밀고 고개를 숙여 하늘을 올려다 본다. 암울하기만 하다. 오늘은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국가의 존폐의 기로에서 단일된 민족정신으로 외세의 침략을 이겨냈고,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핍박과 궁핍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민족적 자존감의 상실 속에서 민주주의를 일으키고 세계 속의 경제대국을 일궤 냈다. 이렇듯 우리민족은 살얼음의 전율속에서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왔다. 매우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고 험한 길을 맨 발로 지르밟으며 전 세계 유래 없이 아주 빠른 시일 내에 다듬어진 성공의 길을 닦았다.
창문 밖의 어두움은 두려움이다. 아이와의 약속은 지켜야 할 신념이다. 물론 사정에 따르겠지만 신념속에서도 두려움이 존재한다. 결국은 적당한 핑계로 모두가 하는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였다. 날씨가 안 좋아서, 위험해서 가고는 싶지만 할 수 없는 이유를 내세웠다. 비가 내리기 전에 동네 한 바퀴라는 타당성 있는 행위를 함께 하는 것으로 현실에 안주하였다. 두려움은 서로의 관계에서 또 다른 두려움을 만든 것 같다.
우리는 상대방보다 우위의 삶을 살고자 하는가? 우리 선조들은 아마도 다른 자보다 더 잘 살기 위해 그 두려움 속에서 용기를 꺼내 이토록 길을 잘 닦진 않았을 것이다. 후세들에게 다시는 그 어려웠던 시절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바쳐 대한민국의 길을 넓혔을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며 자부심과 희열감을 느겼을 것이다.
그 두려움 속에서 황폐화 된 조국의 산과 들에 나무와 곡식을 심고 공장을 짓고 길을 내어 물건을 나르고, 그 위에서 함성을 질렀으며, 평화로운 조국통일의 꿈을 꾸었다. 두려움 속에는 걱정을 물리고 강하게 하는 용기가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이번 여행은 금강길을 따라 가는 여행이다. 우리는 그 중 어느 마을에서 식사도 하고 잠도 자고 많은 이야기도 할 것이다. 아이에게 길을 보여주고 싶다. 구불구불 휘어지고, 고개를 만나면 오르고 내리고, 막혀있으면 돌고 돌아 바다로 향하는 그 길을 함께 가고 싶다. 언제가 내 아이도 가야 할 길을 함께 하고 싶다.
세상엔 두려움과 걱정이 없는 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과 타협하는 자가 있다면, 타협하지 않고 행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어떤 모습이 소수이건 다수이건 옳고 그름은 없다.  항상 모든 것을 배려하며 두려움 속에서도 적당한 타협보다는 용기를 찾을 수 있고, 부당함을 만들거나 동조하기보다는 올바른 소신과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는게 우리 민족이 걸어온 청렴의 길이란 걸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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